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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볼수록 지원 적어"…희망회복자금 맹점에 자영업자 또 뿔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1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서울 중구 명동거리 상가에 임대 안내문이 줄줄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서울 중구 명동거리 상가에 임대 안내문이 줄줄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기준이 '매출'인 데다 구간을 2억원 단위로 잡은 게 이해가 안 간다."

서울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희망회복자금'(손실보상금) 정부안에 분통을 터뜨렸다. 희망회복자금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고통 분담을 위해 두텁고 폭넓은 지원을 추진하겠다"며 당정이 논의하고 있는 사업이다. 매출 구간과 집합금지·영업제한 장단기 여부 등에 따라 최소 150만원에서 최대 2000만원의 지원금을 받는 식이다. 23일 오후 2021년도 2차 추경경정예산안(추경) 심의 후 구체적 액수 등이 확정된다.

박씨는 "매출이 순이익도 아니고 실제 손실을 따지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구간도 최대 2억원씩 차이가 나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정부안에 따르면 매출 2억 1000만원과 3억 9000만원은 같은 지원금을 받지만, 1억 9000만원과 2억 1000만원이 다른 금액을 받는다. 이게 말이 되나"라며 "세금 걷듯이 국세청에 신고된 매출에 요금의 정도나 비율 곱해 지원금을 산정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추경안과 상임위원장 배분 등을 논의하기 위해 23일 여야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가 회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추경안과 상임위원장 배분 등을 논의하기 위해 23일 여야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가 회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희망회복자금 기준과 구간 설정 등을 놓고 맹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앞선 재난지원금 추진 때도 피해보상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시행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기홍 전국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희망회복자금 기준이 된 매출 자료 근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한창 진행됐던 지난해"라며 "코로나 사태 전과 후 매출 폭이 크게 떨어진 경우 오히려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정부가 짜놓은 예산안에 90만명대의 자영업자를 맞추려다 보니 맹점이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이날 낸 성명에서 "자영업자들은 폐업위기에 직면했는데 손실보상금 지급은 10월에 이뤄진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연장되는 시점에서 당장의 지원 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같은 재난 상황에서 긴급대출이나 임대료 등 고정비 해결을 위한 정부의 종합적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담당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경계 선상에서 불만을 표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재난지원금의 기본 골격이 '선별 지급'이기 때문에 각자의 사정을 모두 만족하게 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 또 "국민의 세금으로 추경안이 만들어지면 집행하는 입장에선 예산에 맞게 국세 자료와 인원 등을 고려해 경계선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현금 장사나 소득 신고 누락, 간이·일반과세 선택 등 변수가 많아 사실상 소상공인의 경영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소상공인?자영업자 코로나 방역지침 재정립 및 손실 전액 보상 촉구'를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소상공인?자영업자 코로나 방역지침 재정립 및 손실 전액 보상 촉구'를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납득할 만한 지원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면 형평성 논란이 반복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영업자들이 지원금 논의가 될 때마다 불만을 표출하는 건 결국 합리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며 "지원금은 '피해자 위로' 성격을 띠고 있어 피해 비례 원칙에 따라 주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중앙정부 주도의 지원 방식은 각 지역과 피해 업종의 특이점을 고려하기 어렵다"며 "지자체의 역할을 키우고 금융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활용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정이 합의해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선거를 앞두고 혈세로 포퓰리즘 정책을 시행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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