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메모하며 '합의사항'도 직접 정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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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 얘기는 대통령이 먼저=노 대통령은 이날도 만찬장 벽에 걸린 화가 전혁림씨의 그림 얘기를 먼저 꺼냈다. 노 대통령은 6월 30일 당 지도부와의 회동에서도 통영 앞바다를 그린 전씨의 그림 얘기를 했었다. 노 대통령은 "내가 저 그림의 전경이 바라보이는 산에 올라가봤는데 풍광이 정말 좋더라"며 "저 그림을 그린 화가의 나이가 아흔이 넘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래도 딱딱한 분위기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을 만큼 참석자들은 긴장했다.

이어 된장국을 메뉴로 한 한식이 나왔다. 반주는 없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휴가기간 동안 생각이 많았던 듯 대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해 나갔다. 그러면서 인사 문제를 노 대통령이 먼저 꺼냈다. 식사를 하던 중 노 대통령은 "오늘은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눠보자"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인사권이라는 것이 나에게 있는 유일한 권한"이라며 논란의 핵심인 인사권 문제를 직접 건드렸다.

한 참석자는 "노 대통령이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인사권 논란에 대해 많은 고심을 했고, 당에 불만이 쌓여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 "휴가 중 쉬지 못했다"=노 대통령은 발언 중 "휴가 중이었지만 제대로 쉬지 못했다"고도 했다. 휴가 중 발생했던 김병준 부총리 사퇴 표명과 문재인 법무부 장관 카드 불가론 등으로 적지 않게 고심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대화를 주도하자 곧이어 김근태 의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도 얘기의 물꼬를 트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노 대통령은 시종 당 지도부의 발언을 메모하면서 네 가지 합의사항도 직접 정리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웃는 얼굴로 "논의가 된 것 같은데 이렇게 서로 좋게 협상합시다"라며 합의사항을 읽어내렸다. 이에 김 의장이 "걱정하고 왔는데 잘 정리된 것 같다"고 하자, 노 대통령은 "걱정 많았는데 만나 이야기해 보니 잘 된 것 같다"고 화답했다. 또 정무 현안 등을 논의하기 위한 당.정.청 모임 신설 등에 합의했을 때는 박수도 나왔다고 한다.

우상호 대변인은 "처음에는 참석자들이 모두 긴장하기도 했으나 대화가 30~40분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좋아졌고, 대통령의 표정도 환했다"고 말했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한명숙 총리는 오찬 중간 중간에 "옆에서 대통령 고민도 잘 봤고 당의 입장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 참석자들은 무더운 날씨를 감안해 노타이 차림의 편한 복장으로 회동에 임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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