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딱 걸린 랜디스 … 도핑은 악마의 유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랜디스

게이틀린

본즈

프랑스 도로 일주 사이클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는 암을 극복한 랜스 암스트롱(미국)이 지난해까지 7년 연속 우승함으로써 한국에도 잘 알려진 대회다. 그러나 올해는 만신창이가 됐다. 올해 우승자인 미국의 플로이드 랜디스(31)가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랜디스는 지난달 28일(한국시간) 1차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데 이어 6일 2차 검사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왔다. 지난달 29일에는 남자 육상 100m 세계기록(9초77) 공동 보유자인 저스틴 게이틀린(24.미국)이 역시 도핑(Doping) 테스트에 걸려 선수 자격을 박탈당할 위기에 놓였다. 금지약물은 일시적으로 경기력 향상의 달콤한 열매를 제공하지만 몸과 마음을 황폐화시키고 페어플레이가 생명인 스포츠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금지된 장난' 금지약물 복용 속속 드러나
프로는 더 의혹 … 국내선 검사 규정도 없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사상 최악의 금지약물 파동을 겪은 국제 스포츠계가 여전히 도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랜디스와 게이틀린 외에 아테네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드미트리 베레스토프와 유럽주니어역도선수권 우승자 예브게니 피사레프(이상 러시아)도 지난달 초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불시 검사에서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들통나 출전 자격이 정지됐다. 2005 유럽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챔피언 드웨인 챔버스(영국)는 18개월간 금지약물을 사용한 사실이 발각돼 기록과 타이틀이 모두 박탈됐다.

2월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는 오스트리아 출신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 선수들이 '수혈에 의한 도핑' 혐의로 무더기 조사를 받았다. 수혈 도핑은 금지약물과 달리 미리 뽑아둔 자신의 피나 다른 사람의 피를 경기 직전 수혈, 산소량을 늘림으로써 지구력과 스피드를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울산 전국체전에서 보디빌딩 선수 8명, 역도 2명, 사이클 1명, 근대 5종 1명 등 모두 12명이 금지약물 복용 혐의로 징계를 받았다. 대한체육회가 지난해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가대표 100명 중 7.7명꼴로 금지약물을 복용한 경험이 있다고 실토했다. 한국도핑컨트롤센터(센터장 김동현 박사)에 따르면 지난해 약물 양성 반응을 보인 (등록) 선수는 모두 44명으로 전체 조사 대상자 2079명의 2.12%였다. 지난해 WADA 자료에는 전체 18만3317건의 도핑 대상자 중 2.13%인 3907건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선수들이 스스로 금지약물을 복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도자나 경기단체 임원의 권유로 복용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도핑 혐의로 벌금 200만원과 자격정지 2년의 징계를 받은 보디빌딩 선수 김모(19.W대 1년)군은 지난해 8월 말 "지방 보디빌딩협회 간부가 '보충제'라고 속여 금지약물을 먹게 됐다"며 최근 협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김군은 "아직도 피부에 열꽃이 피는 등 부작용으로 생활이 힘들다"고 울먹였다.

도핑 테스트가 의무화되지 않은 프로스포츠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미국에서는 메이저리그에서 베이브 루스의 통산 홈런 기록(714개)을 넘어선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스테로이드 복용 문제로 시끄럽다. 은퇴한 선수들은 공공연히 "많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한다"고 실토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권고를 받아들여 월드컵에서 도핑 테스트를 하고 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는 금지약물인 에페드린 복용이 드러나 실격되기도 했다.

국내 프로스포츠의 경우에도 도핑의 심각성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아직 의무 검사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축구.야구.농구.배구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국내 여건이 열악하고 예산 문제도 있어 도핑 검사 의무화 규정을 언제 둘지는 미지수"라고 털어놓았다.

이해완.유기웅 인턴기자

◆ 도핑(doping)이란=운동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목적으로 심장흥분제.근육강화제 등의 금지약물을 먹거나 또는 특수한 처치를 하는 일. 원래는 경주마에 투여하는 약물을 도프(dope)라고 했다. 도핑테스트는 1968년 프랑스 그레노블 겨울 올림픽부터 실시했다.

근육강화제 등 약물 복용 왜 "기록 좀 올리려다 … 선수 생명 끝나"

"도핑은 마약과 같습니다. 마약처럼 한 번 복용하면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기록 향상이라는 유혹 때문이지요."

고교시절 육상 유망주로 불리던 차모(23)씨 말이다. 차씨는 대한육상경기연맹 주최 전국 시.도 대항 대회 허들에서 금메달을 따며 장래가 촉망되던 선수였다. 그러나 금지약물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장기복용하다 결국 적발됐고, 대학 진학에 실패한 채 선수의 꿈도 접었다.

금지약물을 복용하면 단기적으로 확실한 효과가 있다. 보디빌딩의 경우 남성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단기간에 근육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많은 선수가 유혹에 무너진다. 지방 고교 대표였던 김모(19)군은 "근육주사를 맞으면 근육의 횡단면이 넓어져 눈에 띌 정도로 볼륨이 생긴다"고 고백했다.

육상 종목은 지구력이나 순간 스피드 강화를 위해 약물을 복용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 100m에 출전했던 벤 존슨(캐나다)이 생생한 사례다. 당시 예선과 준준결승.준결승에서 번번이 턱걸이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던 존슨은 결승에서 불 같은 스피드로 라이벌 칼 루이스(미국)를 제치고 9초79의 당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존슨은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 금메달 박탈은 물론 사실상 국제 육상계에서 추방됐다.

역도와 같이 힘과 순발력을 요구하는 종목은 근육강화제 복용으로 근육을 키우는 효과를 볼 수 있고, 사이클과 같이 장시간 근육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 지구력 강화제(EPO)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격이나 양궁 선수들은 손 떨림 방지를 위해 베타차단제와 같은 약물을 복용하기도 한다. 도핑컨트롤센터장 김동현 박사는 "양궁의 경우 팔의 근육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베타차단제와 근육강화제를 같이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 박동호 박사는 "근육이 강화되면 체력이 올라가는 시너지 효과가 있지만, 훈련에 의해서가 아니라 금지약물로 강화시키면 신체 장기가 손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직후 소변 채취 … 양성 땐 재검
도핑 어떻게 잡아내나

현재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공인된 도핑실험실은 전 세계 31개국 33개다. 아시아에는 6개가 있다. 그중 하나가 KIST에 위치한 한국도핑컨트롤연구센터로, 국내의 도핑 테스트는 모두 이곳에서 진행된다. 센터장 김동현 박사는 "한 가지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9가지 방법 중 기능적으로 가장 알맞은 것을 사용해 검사한다"고 말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경기 직후 선수의 소변을 채취하는 것으로 공인 시료병 A형과 B형에 일정량을 채운다. A형 샘플을 검사한 뒤 결과를 판정하는데 음성이면 문제가 없음을 선수에게 통보한다. 하지만 양성으로 나타날 경우 재검을 위해 B형 샘플로 재검사를 해 결과를 통보하게 된다.

세계반도핑기구(WADA) 규정에 따르면 한 번 양성으로 판명되면 '2년 선수 자격 정지'가 되고, 두 번째는 영구 제명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시즌 중이라도 불시에 도핑 테스트를 할 수 있게 했다.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소변 대신 혈액으로 도핑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