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칼럼

유시민의 변신은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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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 나라가 들끓었다. 한나라당과 언론은 물론 같은 당 의원들조차 격렬히 반대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서까지 "요즘 유 의원을 TV에서 보면 남을 조소하고 조롱하는 표정이 역력하다"는 걱정을 들었던 유 의원이다. "옳은 말을 참 싸가지 없이 하는 정치인"(김영춘 의원) 유시민. 그가 입각할 때 많은 사람은 "그 버릇 어디 가겠느냐, 곧 사고 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취임 6개월이 지났건만 조용하다. 별다른 구설수도 없다. 사십대 후반의 나이에 예측을 뒤집고 변신에 성공한 것인지 검증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복지부 공무원들은 후한 점수를 줬다. 최근 단행한 인사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민감한 정책을 결정할 때는 결재서류에 '실무자의 반대가 있었으나 장관의 정책적 판단에 의해 결정한다'는 기록을 남긴다고 한다. 열심히 일한 공무원이 나중에 다치지 않도록 '배려'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역대 정권과 장관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표를 잃을까봐, 또는 이익단체나 기존 수혜자의 반대를 우려해 손대지 않은 정책도 과감히 고치겠다고 나서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국민연금개혁안이다. 그는 부지런히 여야 정책위 책임자와 국회 복지위 소속 의원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시니컬한 표정은 사라지고, 상대가 민망할 정도로 허리를 굽힌다. 그를 만난 의원들이 "유시민이가 맞나"라고 할 정도다.

건강보험의 약값 제도를 선별등재 방식으로 바꾸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지원하는 의료비를 합리적으로 줄이는 방안도 당장의 인기와는 거리가 멀다. 성공하면 건보 재정이 튼튼해지고 국가 예산의 남용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반대하는 세력은 있지만 국민은 그 효과를 잘 모른다.

언론을 대하는 태도도 확 달라졌다. 취임 후 복지부가 언론을 상대로 고소한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복지부의 잘못을 기자실을 찾아가 먼저 '자백'하는 방식을 택했다. 정책 실패로 삼성SDS에 360억원을 배상하게 된 사안도 그랬다. "유시민이 얄밉더라도 그 정책이 국가의 백년대계라면 도와달라"며 언론인과 만나 술잔을 기울인다.

유 장관은 국회 청문회 말미에 도종환씨의 시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은 없었다'를 낭독했다. '노 대통령의 정치 경호실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공세적 태도로 일관했던 과거는 그에게는'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이었는지 모른다. 정치인의 변신은 위장이요 가식일 뿐인가. "정치에서는 실패했다고 자인합니다. 장관 역할은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게 진심이라면 유시민의 변신은 무죄다.

노 대통령이 여당의 반대를 뚫고 입각시킨 유일한 케이스가 유 장관이다. 김혁규 의원의 총리 임명,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교육부총리 임명 모두 실패했다. 지금 문재인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데 대해서도 역풍이 거세다. 그렇기에 유 장관이 성공한다면 힘든 상황에 처한 노 대통령에게는 큰 위안이 되리라.

전제 조건이 있다. 더 이상의 정치적 욕심이 없음을 확실히 해야 한다. 그가 대선주자의 하나로 거론되는 순간 야당은 물론 여당도 복지부의 정책에 등 돌리게 될 것이다. "2008년 2월 25일 아침에 집에서 늦잠 잘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 그런 자세로 임해야 국민연금 개혁도, 약값 개혁도 성공할 수 있다.

김두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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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現] 보건복지부 장관(제44대)
[現]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제17대)

195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