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 읽기

장마와 폭염

중앙일보

입력 2021.07.1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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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요즘은 장맛비와 폭염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다.

칠팔월은 억수비와 폭염의 계절
고요에서 서늘함 얻었던 선인들
피서의 지혜 스스로 찾아봤으면

나는 졸시 ‘칠팔월’을 통해 이 시기 삶의 형편을 이렇게 적었다. “여름은 흐르는 물가가 좋아 그곳서 살아라// 우는 천둥을, 줄렁줄렁하는 천둥을 그득그득 지고 가는 구름// 누운 수풀더미 위를 축축한 배를 밀며 가는 물뱀// 몸에 물을 가득 담고 있는, 불은 계곡물// 새는 안개 자욱한 보슬비 속을 날아 물버들 가지 위엘 앉는다// 물안개 더미같이, 물렁물렁한 어떤 것이 지나가느니// 상중(喪中)에 있는 내게도 오늘 지나가느니// 여름은 목 뒤에 크고 묵직한 물주머니를 차고 살아라”  옛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칠팔월의 아침저녁 시골집 풍경 가운데에는 풀을 잔뜩 베어 지게에 지고 오시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장맛비를 맞으며 논둑 밭둑에서 거세게 자라난 풀들을 아침과 저녁에 낫으로 베어 한 짐 가득 지고 오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골짜기에서 콸콸 내려오며 모인 물줄기들이 시골 동네 앞을 요란하게 굽이쳐가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동네 어르신들은 ‘큰물 나가신다’라고 이르시곤 했다.

시인 김수영은 장마가 져서 강물이 내려가는 모습을 “사자떼들이 고개를 저으면서 달려 내려가는 것 같다”라고 한 산문에서 썼다. “높아진 수위는 사자의 등때기처럼 넘실거린다”라고 함께 썼다. 어쨌든 물이 나가는 것을 ‘큰물’이라고 불러 영험한 것으로 대하든지, 혹은 성난 사자에 빗대든지 이런 각각의 비유들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이 묻어 있다.

추사 김정희의 시편들을 최근에 다시 찾아 읽었다. 여름날의 시상을 읊은 것이 더러 보였다. ‘성동피서(城東避暑)’라는 제목의 시에서는 “한 지팡이 한만한 지경을 거느리며/ 버들 물결 솔 파도에 더위를 흩날리네”라고 읊었다. 느긋하게 걸을 적에 버들의 물결과 소나무의 파도가 더위를 흩어지게 한다는 뜻인 듯했지만, 그 속뜻을 확신할 수 없어 내심 좀 더 궁리해 보았다. 버들의 푸른 가지가 이리저리 일렁이듯이 흔들리는 것을 물결에 견주었고, 소나무를 지나온 바람의 쾌적함을 파도의 일어남과 그 시원하게 부서지는 소리에 견준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시구에 대한 이해가 미진한 듯해서 선가(禪家)의 화두처럼 이 문장을 좀 더 지니고 그 속뜻을 짚어보려 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의 또 다른 여름 시편에는 “더위를 피하는 법 이제 알았네/ 고요가 극에 가면 마음이 비어/ 푸른 술은 석 잔을 기울였는데/ 개인 뫼는 육여(六如)와 흡사하구나”라는 시구가 있었다. 육여는 불교에서 말하는 육유(六喩)를 일컫는다. 존재의 무상함이 곧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갯불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추사는 비 그친 여름 산의 변화무쌍함을 이 여섯 성질과 다름없다고 본 것일 테다. 여름 산의 계곡과 봉우리에서 일기가 수시로 변화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되 그 관찰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함께 느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시구에서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 고요를 얻고 마음의 텅 빔을 얻는 것에 있다고 쓴 대목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마음에 번뇌가 적고 몸에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를 적정(寂靜)이라 하는데, 이 적정에 이르면 더운 줄을 모르게 된다는 뜻일 테니 마음을 항복받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 테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의 여름 나기 풍경 가운데 다소 생소하고 유별한 것이 없지 않다. 우선 용천수를 들 수 있다. 이른바 산물이라는 것인데, 땅속 물이 바닷가 주변에서 솟는 것이 용천수이다. 얼음처럼 차서 더위를 내보내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을 정도이다. 제주 출신의 강정효 사진작가는 여름날 제주의 음식으로는 개역을, 여름날 쉼터로는 폭낭을 대표적으로 든다. 개역은 미숫가루를 말하는데, 밥에 비벼 먹거나 찬물에 타서 먹는다. 폭낭은 팽나무를 뜻한다. 폭낭 아래 댓돌에 앉아 땀을 식히는 사람들을 실제로 자주 볼 수 있다. 강정효 작가는 여름날의 제주 풍경으로 밤바다를 밝히는 낚싯배의 불빛, 농가의 빨랫줄에 널어놓은 갈옷을 꼽기도 한다. 요즘은 한치를 잡기 위해 출항한 배들이 밝히는 불빛이 밤바다의 장관을 이룬다. 갈옷은 떫은 풋감 즙으로 물들인 옷을 말하는데, 일할 때 입거나 평상복으로 입는다.

장마가 물러가지 않아서 또 언제 얼마나 많은 빗줄기를 맞게 될지 알 수 없고, 또 폭염이 얼마나 기승을 부릴지 알 수 없다. 많은 물, 그리고 불과 같은 빛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고, 코로나 위기 속에 불안하게 살고 있지만 이 여름을 잘 지낼 방법을 스스로 찾아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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