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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중 사망 10명중 6명 어르신…그들에겐 초록불 너무 짧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길을 건너다 사고를 당하는 노인들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

길을 건너다 사고를 당하는 노인들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

#. 지난달 30일 오후 인천시 서구 오류동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81세 노인이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당시 화물차 운전자는 이면도로에서 큰 길가로 우회전하는 과정에서 노인을 미처 보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2021 안전이 생명이다>④ #작년 보행 사망자 중 노인 57.5% #절반 넘게 길 건너다 사고 당해 #도시 보다 지방이 노인 안전 취약 #인프라 확대, 교통약자 배려 필수

 #. 지난해 11월 30일 오전엔 충북 청주시에서 노인이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좌회전하던 차량과 충돌해 크게 다쳤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은 보행 신호가 초록불로 켜지자 출발했지만, 절반도 못 간 상황에서 신호가 바뀌면서 사고를 당했다.

  길을 걷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로 다치고 목숨을 잃는 노인(만 65세 이상)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체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계속 증가세다.

 12일 한국교통안전공단(이하 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는 모두 1093명이었다. 이 중 노인은 628명으로 전체의 57.5%를 차지했다. 길을 가다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 10명 중 6명은 노인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2018년(56.6%), 2019년(57.1%)에 이어 3년 연속 비중이 늘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최근 3년간(2018~2020년)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현황을 분석했을 때 노인에겐 길을 건널 때가 가장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보행사고 사망자의 54.8%가 횡단 중에 발생했다. 사망자의 절반을 넘는 수치다. 걸음이 느린 탓에 제시간에 길을 다 건너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를 당한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도시보다는 지방에서 노인 안전이 더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지방의 노인 보행사고 사망자 비율은 무려 71.7%나 됐다. 도시지역보다 17.3%p나 높다. 차도나 길 가장자리로 통행하다 목숨을 잃은 노인도 30%가 넘는다.

 공단 교통안전처의 홍성민 책임연구원은 "지방 지역이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인도가 부족하다 보니 노인들이 위험하게 차도나 길 가장자리로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 때문에 노인의 신체적 특성과 지역별 상황에 맞는 보호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책임연구원은 "지방의 경우 노인 통행이 잦은 도로를 중심으로 인도를 설치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노인이 많이 이용하는 횡단보도에는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을 때 초록색 보행 신호를 자동으로 연장해주는 시스템의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 이 시스템은 현재 제주도와 파주(경기), 창원(경남) 등에서 시범 운영 또는 설치를 추진 중이다.

 고령자가 건너기 쉽도록 차로 폭을 좁히는 방안도 거론된다. 도로의 바깥쪽이나 안쪽을 좁혀서 보행자가 도로에 노출되는 시간을 가급적 줄여 사고 위험을 막자는 취지다. 주로 노인 통행량이 많은 지역이 대상이다.

보행신호 자동연장 시스템 개요도. [자료 한국교통안전공단]

보행신호 자동연장 시스템 개요도. [자료 한국교통안전공단]

 운전자의 보행자 보호 의식 강화도 요구된다. 지난 5월 공단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회전 차량의 절반 이상(53.8%)은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있어도 양보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또 26.9%는 양보는 했지만, 차를 완전히 멈추지 않고 보행자에게 계속 접근하면서 빠른 횡단을 재촉하거나 안전에 위협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

 권용복 공단 이사장은 "교통약자인 노인을 보호하기 위해선 각종 인프라 개선도 요구되지만, 보행자를 보호하려는 운전자의 노력과 배려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중앙일보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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