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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홍 집안일을 국가가 간섭?···친족상도례 폐지론 꿈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가족간 재산범죄 처벌을 제한하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 폐지론이 국회에서 공론화 될 조짐이다. 지난달 28일 폐지법안(형법 개정안)이 발의된 데 이어, 지난 6일에는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폐지 또는 개정을 논의할 때”라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냈다.

박수홍 논란으로 뜬 친족상도례…폐지·개정론 동시 분출 

방송인 박수홍씨와 반려묘 다홍이. SNS캡처

방송인 박수홍씨와 반려묘 다홍이. SNS캡처

친족상도례는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존재한 오래된 개념이다.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 중인 친족이 사기·횡령·배임 등 재산범죄를 저지를 경우 그 형을 면제한다는 내용의 형법 원칙이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용어지만, 3월 방송인 박수홍(51)씨가 전 소속사 대표였던 친형으로부터 출연료 등 100억원 상당의 피해를 봤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주목받았다. 박씨가 피해를 입은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형이 ‘동거 중인 친족’일 경우, 처벌이 제한(6개월 내 고소할 경우엔 처벌 가능)될 수 있다는 해석 때문이었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지난달 28일 관련 조항을 삭제(형법 328조·344조·365조 등)하는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1인 가구가 일반화되고 부부 사이에도 소유권을 나누는 극단적 가족 분화 사회에서 친족상도례는 부작용이 더 크다”며 “사회적 공론장 만들려 법안을 발의했다. 박수홍씨 사건으로 현실적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부각이 돼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장애인 경제적 착취 사례 19.2%의 가해자가 가족 및 친인척”이란 보건복지부의 ‘2019 장애인 학대 현황보고서’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지난 6일 발간한 ‘친족상도례 조항의 개정 검토’ 보고서에서 “변화된 국민 인식과 관심에 따라 친족상도례 조항 개정을 검토할 때”라는 의견을 냈다. 보고서는 친족상도례 적용 대상이 직계존비속·배우자(동거)로 제한되는 프랑스, 친족·가족구성원에게 친고죄 대상 효력만 있는 스위스 등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의 경우 유사 규정을 둔 외국 국가들에 비해 친족의 범위가 넓은데다 효과도 형(刑) 면제 등이 포함돼 가해자에 유리하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한국처럼 직계혈족과 배우자에 대해 형을 면제해주는 일본의 경우에도, 절도·부동산침탈죄 등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범죄 범위가 좁다.

“피해자 권익보호” vs “예상밖 부작용 가능성”

 친족상도례 조항이 포함된 형법 개정안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모습. 오종택 기자

친족상도례 조항이 포함된 형법 개정안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모습. 오종택 기자

그러나 친족상도례가 폐지 또는 조정되기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논의가 됐지만 성과로 이어진 적은 없다.

2009년 법무부는 형면제 조항을 완화하는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입법에는 실패했다. 2012년에는 친족상도례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가정 내부 문제는 국가형벌권이 간섭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법취지가 있다”며 합헌 판단을 내렸다. 국회에서도 2014년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친족상도례 배제법(최동익), 2017년 적용범위 축소안(박남춘) 등의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법 제정이나 개정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헌재에는 지난해에도 친족상도례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국회 내에서도 신중론이 적지 않다. 국회 법사위 소속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50년 넘게 존재한 법을 일부 사례로 바꾸면 가족관계 파탄 등 예기치 못한 여러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 하기에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당 유상범 의원도 “혈족 관계에서 법 잣대를 들이대면 선한 의도와 달리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에 공청회를 통해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서 들어봐야 한다”고 우려했다.

법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현재 친족상도례 규정은 지난해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다. ‘가족의 일에 법이 개입해선 안된다’는 인식이 과거보다 약해졌고, 최소한 노인·장애인·미성년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용만이라도 불합치 판단이 나와야 한다는 취지다. 반면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족 자치와 피해자 의사도 존중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국가의 권력 행사 범위가 너무 커진다. 간통죄를 폐지하니 주거침입죄로 처벌하냐 마냐 하는 논쟁이 불거졌듯 다른 불편이 생길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친족상도례를 폐지하기 보단 배우자와 직계혈족 등 가까운 가족에겐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를, 그 외 친족에 대해선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는 절충안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이란 말도 나온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족의 형태, 가족의 친소관계가 변화했기 때문에 대상 범위를 축소하는 것도 방법이다. 완전 폐지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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