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론

젊은 암환자의 절망을 보며 다시 생각하는 의사의 역할

중앙일보

입력 2021.07.0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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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재태 경북대 의과대학 핵의학과 교수

이재태 경북대 의과대학 핵의학과 교수

가수 보아의 오빠인 권순욱 뮤직비디오 감독이 암과 투쟁 중 SNS에 올린 글이 일으킨 반향이 아직도 남아 있다. 복막에 전이된 암으로 항암 치료와 응급 수술까지 받았으나 여전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남은 기간이 불과 몇 개월 정도라는 진료기록까지 SNS에 올리자 많은 국민이 젊은 예술인을 응원했다. 권 감독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버텨보겠다고 다짐했다.

환자 납득하게 의사도 소통해야
적정 의료 범위에 합의 도출 필요

그러면서 그는 의사들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에게 의사들이 “희망이 없다”, “이 병은 낫지 않는다”, “이번 항암제에도 듣지 않는다면 주변 정리하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권 감독은 “이대로 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고 복막암에서 회복된 환자도 있는데도 의사들의 잔인한 말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환자 가슴에 못을 박는 이런 이야기를 많은 의사가 면전에서 너무 쉽고 싸늘하게 해서 매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가 언급한 ‘의사의 싸늘함’에 대해 네티즌 의견은 실로 다양했다. 의사 모두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냉혈한일 수는 없겠지만, 환자 입장에서 진심으로 대화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성을 갖추도록 의과대학 교육을 강화하라는 요구가 많았다. 짧은 진료 시간에 기계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지금의 진료 체계를 이제는 환자를 더 배려하는 환경으로 바꿔 달라는 절절한 호소도 있었다.

의사들의 하소연도 있었다. 냉정하게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환자가 사망할 경우 의사의 불성실한 설명으로 간주해 소송당하고 법적 책임까지 요구받는다고 항변했다. 권 감독의 불만은 이런 살벌한 진료 환경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라고 의사들은 반박했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필자가 진료한 말기 갑상샘암 환자가 문득 생각났다. 진료 전에 항상 효심 깊은 딸들이 먼저 들어와서 “우리 어머니는 현재 상태를 모르시니 이번에도 ‘관리를 잘해서 좋아졌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환자는 마지막에도 딸의 손을 잡고 평온하게 가셨다.

누구나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숭고한 권리가 있다. 하지만 언제나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임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정된 순간이 가까워지면 환자에게 어려운 통고를 해야 한다. 이 과정이 의사들도 매번 어렵고 힘들다. 그래도 혼잡한 외래나 병실이 아니라 분리된 별도 공간에서 소통의 기술을 학습한 의사가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환자가 납득할 수 있게 알려줘야 한다.

40년 차 의사인 필자는 권 감독의 글과 댓글이 대한민국 의료의 본질에 정확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본다. 의학적 임종이 가까운 환자에게 끝까지 희망을 준다는 이유로 이뤄지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희망 고문을 받기보다는 정확한 의사 소견을 듣고 삶을 정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을 보내기를 원한다.

제한된 의료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도 사회적 관심거리다. 2012년 연구에서 암 환자의 1년 생명 연장을 위해 기꺼이 부담할 수 있는 비용으로 환자는 1억5000만원, 의사와 보건 정책 담당자는 그 금액의 각각 50%와 17%가 적절하다고 답했다. 이해 당사자의 서로 다른 다양한 욕구를 짐작할 수 있는 연구였다.

한국은 암 환자가 사망 전까지 항암 치료를 받는 비율이 아직 높은 나라다. 최신 항암제 도입으로 치료 성적은 더 좋아졌으나 의료비 증가 폭도 커졌다. 이제 이를 고려한 적정 의료 범위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 어느 운동선수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계속 노력해야 하던 자신이 슬펐다고 말했으나, 그 노력이 그를 발전시켰다. 이번에 공론화된 젊은 암 환자들의 슬픔을 공감하면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도록 체계적인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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