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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밀당' …방일 카드 못 버리는 文, 정상회담 간보는 스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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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3일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계기로 일본을 방문할 것이라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8일 이같은 소식을 보도하며 일본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3일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계기로 일본을 방문할 것이라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8일 이같은 소식을 보도하며 일본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오는 23일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다면 최악으로 평가되는 한·일 관계를 개선할 ‘막판 뒤집기’가 될 수 있을까. 이웃국가의 경사를 축하하는 수준을 넘어 정치적 의미가 큰 문 대통령의 방일 옵션을 두고 양국 간 '밀당'이 이뤄지는 분위기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8일 “일본 정부는 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에 맞춰 일본을 방문할 경우,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와 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이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검토하는 것에 대해 “한국 측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문 대통령이 스가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조건으로 방일을 원했다는 의미다.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한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한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간 일본 언론은 문 대통령이 방일 가능성을 일본 측에 타진하고 있다고 꾸준히 보도해왔다. 한국과 일본 정부는 그 때마다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스가 총리 역시 8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측에서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누가 참석하는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일본 언론의 이같은 보도가 이어지는 건 일본 정부의 암묵적 확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보도하는 매체가 요미우리→산케이→마이니치 순으로 달라지는 것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지난달 15일 요미우리신문은 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평창 올림픽 계기 방한의 답례로 (일본을)방문하고 싶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해 왔다고 보도했다. 지난 6일엔 산케이신문이 “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 계기 방일 의향을 전달해 왔고, (방일이) 실현되면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보도했다.

文 방일 둘러싼 한·일 기 싸움 

그간의 일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문 대통령의 방일 의사 전달→방일 계기 한·일 정상회담 요청→일본 측의 검토’ 순으로 관련 논의가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는 다른 입장이다. 일본 측에 문 대통령의 방일 의사를 전달한 바는 없고, 다만 양국 간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한·일 정상회담이 합의된다면 방일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식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지난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일본 정부 관계자가 (문 대통령의 방일을 놓고) 장난치고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생각을 우리 국민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처럼 어느 쪽이 먼저 희망했는지를 두고 양국 간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는데도 문 대통령이 ‘방일 카드’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실무 협의만으론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일 관계가 악화된 현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은 실무선에서 국장급 협의 채널을 가동하고 있지만 강제징용·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갈등을 비롯한 현안에 대해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관련 논의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청와대 참모진 일각에선 ‘정상회담을 갖는다 해도 현재로선 양국 입장차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의견과 ‘일본의 명확한 답변이 없는 상태에서 방일 의사를 밝히는 것은 지나친 저자세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직접 스가 총리와의 대화·협의를 통해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열려도 '갈등 해소' 가시밭길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지난해 9월 아베 신조 총리 취임 후 두 정상이 첫 대면하는 자리가 된다. 다만 양국 간 불신이 여전한데다 일본은 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으로 '한국의 전향적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어 전향적 갈등 해소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지난해 9월 아베 신조 총리 취임 후 두 정상이 첫 대면하는 자리가 된다. 다만 양국 간 불신이 여전한데다 일본은 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으로 '한국의 전향적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어 전향적 갈등 해소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포토]

다만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의 첫 정상회담이 이뤄진다 해도 양국 간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일본이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오모테나시(손님을 극진히 대접)’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단 점이 문제다.

마이니치신문 역시 보도를 통해 “스가 총리는 개막식 전날인 22일 각국 정상급과 회담을 이어갈 예정이며, 문 대통령과의 회담도 그 일환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일본 정부 분위기를 전했다. 정상회담이 열린다 해도 과거사 갈등, 수출규제 보복 해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등 양국 간 현안이 폭넓게 논의되기보다는 행사 주최국으로서 손님에게 안부를 묻고 인사하는 수준의 가벼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日 "한국이 먼저 해결책 제시해야"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이 전향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점 역시 걸림돌이다. 올림픽을 계기로 대통령이 직접 일본을 방문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성이 큰 외교 행보다. 하지만 실무 협의에서 진전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는 정상 간 만남이 이뤄진다고 해도 갈등 현안을 풀기 위한 극적 합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와 관련 스가 총리는 8일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는 구조선반도 출신 노동자(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 등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한국 측이 책임을 갖고 대응해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과거사 갈등과 관련) 한국 측의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는 (일본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전제 하에 (문 대통령이) 방일하는 경우 외교상 정중히 대응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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