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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펜션이 1주일에 1억···영국이 봉쇄 풀자 '미친 휴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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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영국 보수당의 폴 니커슨 의원은 오는 8월 떠날 가족 휴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터무니없이 비싼 숙소 가격으로 휴가 장소와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서다. 니커슨 부부는 어린 아들 셋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정원이 있는 펜션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잉글랜드 콘월주의 방 세 개 짜리 빌라형 펜션도 찾아놨다.

해외 못 나가자 국내 예약 몰려 #귀국 땐 격리, 코로나 검사비 부담 #"휴가철 물가 터무니없이 올라"

영국 켄트주 브로드스테어스의 한 해변에서 피서객이 일광욕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영국 켄트주 브로드스테어스의 한 해변에서 피서객이 일광욕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그런데 가격이 수상했다. 1박에 1만232파운드(1600만원), 일주일 사용료가 7만1627파운드(1억1185억원)에 달했다. 영국 직장인 평균 연봉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다. 다른 펜션도 마찬가지였다. 방 세 개 이상 숙소는 일주일에 기본 8000파운드(1253만원) 이상이었고, 방 두 개 초소형 펜션이 966파운드(150만원)로 가장 쌌다.

평소 휴가철 평균 숙소 가격의 두 배 수준이다. 그나마 예약 가능한 숙소도 9곳에 불과했다. 결국 니커슨은 올여름 콘월주에서의 휴가를 포기했다. 대신 잉글랜드 북동부 브리들링턴에서 일주일간 캠핑을 하기로 했다.

그는 “이것은 수요와 공급 문제”라며 “인기 휴양지의 주택 소유자들과 업체들은 올해 휴가객들의 선택지가 좁아지고, 숙소가 부족한 상황을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 잉글랜드 콘월주의 세인트 아이브스에 있는 한 별장의 8월 중순 일주일 사용료는 7만1000파운드(1억1145만원)로 책정됐다. [홈페이지 캡처]

영국 잉글랜드 콘월주의 세인트 아이브스에 있는 한 별장의 8월 중순 일주일 사용료는 7만1000파운드(1억1145만원)로 책정됐다. [홈페이지 캡처]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에 접어든 영국이 ‘스테이케이션 인플레이션’에 허덕이고 있다. 올해 휴가철 바가지가 극성을 부린다는 얘기다.

4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올해 해외여행 대신 집과 근거리에서 휴가를 즐기는 ‘스테이케이션’의 인기로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들 국내 휴가로 돌아서는 이유 중 하나는 해외를 오갈 때마다 겪는 자가 격리와 코로나19 검사비를 피하기 위해서다.

특히 이탈리아 등 이웃 국가에서 영국발 입국자의 방역을 강화했지만 영국 정부는 7월 19일 예정대로 방역 조치를 전면 해제하겠다고 밝혀 영국 국민들로선 국내 휴가 외엔 다른 선택지를 찾기가 힘들어졌다.

방역 조치가 해제되면 영국에서는 실내외 어디서든 마스크를 벗어도 되고, 스포츠 경기장과 극장 내 수용 인원 제한이 없어진다. 또 나이트클럽 등 유흥시설도 정상 영업에 들어간다. 이런 이유로 활동에 제약이 있는 해외보다 자유롭게 피서를 즐길 수 있는 국내 여행이 더 편해진 측면도 있다.

지난 1월 영국 런던 시티 공항. 영국 정부는 현재 각국의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녹색', '황색', '적색' 등 3개 국가로 나눠 방역 지침을 적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월 영국 런던 시티 공항. 영국 정부는 현재 각국의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녹색', '황색', '적색' 등 3개 국가로 나눠 방역 지침을 적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문제는 피서객을 수용할 곳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미 콘월주의 1박 평균 숙박비가 2019년보다 30% 올랐고, 동부 유명 해변 휴양지인 링컨셔주의 스케그네스도 평소 35파운드(4만원)에서 120파운드(19만 원)까지 올랐다. 1박 평균 120파운드(18만 원)를 유지하던 웨일스 펨브로크셔 주도 27% 올라 175파운드(26만 원) 선에서 예약되고 있다.

휴가 시설을 찾는 사람은 많고 숙소는 적다 보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자택을 글로벌 숙박공급 업체인 ‘에어비앤비’에 등록해 여름 한 철 장사에 나서고 있다.

국내 여행의 인기는 공원 캠핑장, 카라반 여행 수요도 끌어올렸다. 영국의 카라반 대여·판매 업체인 ‘로빈슨 카라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규 고객은 지난해 대비 20% 증가했고, 카라반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증가했다.

카라반 대여 가격도 올랐다. 콘월주 뉴키에 위치한 한 카라반 시설의 일주일 대여료는 4인 가족 기준 3869파운드(606만 원)로 인근 펜션 사용료를 넘어섰다. 데일리메일은 그동안 호텔이나 펜션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카라반의 장점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지난 5월 영국 남부 브라이튼 해변이 관광객들로 꽉 차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5월 영국 남부 브라이튼 해변이 관광객들로 꽉 차 있다. [AP=연합뉴스]

숙소를 구하지 못한 휴가객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이번 휴가를 지중해 휴양지인 몰타로 정했다가 국내 여행으로 바꾼 도나 브런튼이 그랬다. 브런튼은 귀국 후 5일간 자가 격리할 여유가 없고, 네 식구 코로나19 검사비 1200파운드(200만 원)가 부담스러워 휴가지를 콘월주로 바꿨다. 하지만 이미 휴양지 내 펜션 비용은 수천 파운드를 호가했고, 예약도 꽉 차 있었다.

급하게 카라반으로 숙소를 정했지만 일주일 사용료로 3699파운드(580만원)를 내야 했다. 브리튼은 “몰타에서 일주일 여행 예산은 항공료·식비·숙박비 모두 합쳐 2500파운드(400만원)에 불과했다”면서 “국내 여행은 숙박비만 해도 그 이상이다. 휴가비가 말도 안 되게 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유명 휴가지에서는 숙박비 뿐만 아니라 차량 대여, 식재료 및 공산품 수요가 늘면서 공급 부족사태가 예상된다”며 “이로 인해 휴가철 물가가 터무니없이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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