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여순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제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서울의 달빛 0장』을 포함해 그의 작품 대부분이 그러하다. 김윤지는 『김승옥 소설의 연구』에서 “김승옥의 소설에서 아버지가 등장하는 소수의 작품은 그 역할이 미약하고 부정적으로 나타난다”고 평론했다.

김승옥은 2003년 출판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보통 아버지들처럼 맛있는 것이나 사주시는 분으로 알고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가 초등학교 일학년 땐데, 그때 여순반란 사건이 일어났지요. 아버지는 불쑥 들어오셔서 내게 용돈을 주고 떠나셨습니다. 꽤 액수가 컸기 때문에 그날을 기억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여순사건 때 사망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정부 진압군과 맞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이 집단 희생됐다.

미국 잡지 라이프(Life) 사진기자 칼 마이던스는 이렇게 적었다. “정부군은 순천농림학교에 시민을 모아놓고 보복을 했다. 이름도 죄명도, 누가 심문하고 누가 사형을 집행했는가도 기록되지 않고 그렇게 소멸됐다.” 기록이 없기에 사실관계도 파악할 수 없다. 민간인 희생자가 수백 명이라는 주장부터 수천 명에 이를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손바닥을 살펴 농사일의 흔적이 있으면 풀어줬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질 뿐이다.

지난달 29일 국회에선 여야 합의로 여순사건 특별법이 통과됐다. 2001년 16대 국회 이후 4차례나 발의됐지만 이념 대립 등으로 무산된 그 법이다. 사건 발생 73년 만에 여순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게 됐다. 시간 속에 흩어져 버린 역사를 두부 자르듯 명확하게 나눌 순 없겠지만, 적어도 좌·우 대립의 아픈 기억과 민간인 희생자의 이름은 남겨야 한다.

김승옥은 “앙드레 지드의 지적대로 한 편의 소설 속에는 작가의 몫과 독자의 몫과 신(神)의 몫이 있다”고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나간 역사에도 동시대인의 몫과 다음 세대의 몫과 신(神)의 몫이 있다고 믿는다. 피·땀·눈물이 담긴 역사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작업이야말로 다음 세대인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