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 수도권 폭발 ‘국토균형발전’ 역주행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03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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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호 01면

SUNDAY 진단 

여권의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17일 ‘친문 핵심’으로 불리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만나 “지방은 소멸 걱정, 수도권은 폭발 걱정을 하는 불공정한 상황이 최근 온갖 갈등과 절망, 좌절의 원인”이라며 “소멸 위협을 받는 지방에 우선 투자하고 정책을 우선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0일 “국가균형발전은 시급한 과제며 충청권 광역철도망 등 초광역 발전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면서 국토균형발전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수도권 인구·생산 비중 절반 넘어
균형예산 144조 쓰고도 격차 커져

지방 활성화, 선거 때 공약에 그쳐
228개 시·군·구 중 46% 소멸 위험

중국 웨강아오 지역 등 개발 열풍
획일적인 분산 정책만으론 한계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경기도를 묶은 수도권은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11.8%를 차지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수도권 인구는 2019년 처음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지역내총생산(GRDP)은 1000조원을 넘어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51.9%를 기록했다. 그만큼 비수도권 지역의 공동화는 심해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 가운데 86곳의 본사가 수도권에 위치했다. 서울만 70개다. 기업이 없으면 일자리도 없다. 기업 증가-일자리 증가-지역 경기 활성화-지방대 활성화로 이어지는 순환의 고리가 처음부터 끊어진 셈이다. 실제로 전국 228개 시·군·구 기준 소멸위험지역은 2019년 5월 기준 93곳(40.8%)에서 2020년 4월 105개(46.1%)로 증가했다. 소멸위험지역은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소멸위험지수가 0.5 이하인 곳이다. 인구 감소로 30년 내 사라질 위험이 큰 지역이라는 의미다.

수도권 집중을 넘어서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악화하면서 정부도 다양한 대책을 내놨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지역 발전 사업에 쓸 국가 예산을 따로 편성하기 위해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했다. 균형발전예산은 2005년 5조4000억원을 시작으로 점점 늘어나 지금까지 144조원을 투입했다. 사라지는 지방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공공기관 이전도 추진했다. 지난해까지 153개 기관이 전국 10개 혁신도시와 개별 지역으로 옮겼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KDB산업은행, 한국공항공사 등 122개 공기업 및 공공기관의 추가 이전을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균형발전은 정권 교체기에 공약으로만 등장할 뿐 근본적인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국토교육원에 따르면 혁신도시 이주자 가운데 수도권 출신은 16%에 그쳤다. 지방으로 이전한 공기업 직원 중 현지에 뿌리내린 사람은 22%에 그쳤다. 균형발전예산도 상당 부분이 수도권에 투자됐다. 안산 고잔신도시와 서울 여의도를 잇는 신안산선 건설 사업비 3조3000억원 가운데 지금까지 5800억원이 균형발전예산으로 투입됐다. GTX 건설과 신분당선 확장 등 수도권 교통망 확충 관련 69개 사업에 투입된 균형발전예산은 6조9000억원에 달한다. 교통 및 물류 분야에 배정된 균형발전예산 총액(23조2000억원)의 30% 수준이다. 이들 노선이 지나가는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1년 새 두 배로 올랐다.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한 대책이 수도권 집중을 부채질한 셈이다.

해외 거대 도시와 경쟁할 거점 전략 필요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런 지방소멸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지방대학의 몰락이다. 올들어 지방대의 정원 미달 사태가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2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따르면 2021학년도 신입생 추가모집은 4년제 대학 162개교에서 2만6129명이었다. 이 가운데 91.4%인 2만3889명이 비수도권 대학에서 나왔다. 2000년 이후 폐교된 대학 18곳 역시 모두 비수도권이다. 이런 상황은 갈수록 심해질 전망이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올해 대학 입학자 수는 33만명, 전문대는 15만명이다. 2000년대 초반 66만~68만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입학자 수가 50만 명 밑으로 떨어진 건 1996년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대학교육연구소는 “올해 입학정원이 유지될 경우 2024년 미충원 인원이 10만명에 달해 신입생 충원율은 79%에 그칠 전망”이라며 “미충원 인원의 상당수는 지방대 몫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 수도권 규제 등을 통한 균형발전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지낸 이민원 광주대 교수는 “덜렁 공공기관만 옮기기보다는 관련 민간 기업, 주요 정부기관, 교육기관이 함께 이동해야 기대했던 지역 분산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방 분산 정책이 국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느냐는 근본적인 문제가 남는다. 생물학자인 막스클라이버는 동물의 몸집이 두배로 늘어날 때 에너지 소모는 75%만 증가한다는 ‘스케일의 법칙’을 밝혀냈다. 코끼리는 쥐보다 1만배 무겁지만,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는 1000배면 족하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는 2017년 저서 『스케일』을 통해 이런 법칙이 사회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도시가 두배로 커질 때마다 필요한 도로·전선·가스관·주유소 등 기반시설은 세계 어디서나 100%가 아니라 85% 증가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특허 수, 국내총생산(GDP), 임금 같은 성과도 15%씩 더 늘어난다. 물론 독감 환자 수, 범죄 건수, 오염, 교통 체증 같은 부정적인 결과도 똑같이 15% 더 많이 늘어난다. 도시 집중의 부작용에도 전세계에 메트로폴리스(거대 도시) 열풍이 부는 이유다.

중국은 홍콩-마카오-선전-광저우를 묶은 웨강아오 지역을 아시아의 경제 중심지로 키우고 있다. 인구는 프랑스와 비슷한 6700만명, GRDP는 1조3800억달러(1560조원)에 달한다. 도쿄-요코하마-치바의 도쿄만 지역은 4300만명에 1조8600억달러(2100조원), 뉴욕 지역은 2340만명에 1조4500억달러(1640조원)이다. 우리도 수도권-충청-부울경을 단일 클러스터로 묶어 웨강아오처럼 개발하거나, 아예 수도권을 집중 개발하고 비수도권은 청정 전원지역으로 유도하는 등의 중장기 대책이 필요하다. 행정수도를 세종으로 옮긴다고 지방 일자리·학교·인프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해당 지역 아파트값을 끌어올리는 데만 효과적이었을 뿐 국가 경쟁력 강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젠 어떤 방식의 국토 발전 전략으로 웨강아오와 경쟁할 것인지 정치권에서 청사진을 내놓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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