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종철 고문치사 밝힌 검사, 아들은 대검 인권정책관 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용훈(사법연수원 27기) 신임 대검찰청 인권정책관. 중앙포토

최용훈(사법연수원 27기) 신임 대검찰청 인권정책관. 중앙포토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쓰러졌습니다.”

1987년 1월 16일 강민창 당시 내무부 치안본부장이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다. 이틀 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09호에서 조사를 받다 사망한 22세 청년 박종철 군의 사인(死因)에 대한 경찰의 공식 해명이었다. 공안사건 수사 도중에 의도치 않게 단순 쇼크사했다는 주장이었다.

모두 거짓말이었다. 실제론 경찰이 불법 체포에 이어 폭행, 전기고문, 물고문을 한 끝에 숨지게 한 고문치사(拷問致死)였다. 진실은 검찰에 의해 밝혀졌다. 당시 최환(78·사법시험 6회) 서울지검 공안부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부산고검장까지 지내고 1999년 5월 검찰을 떠났다. 다음은 최 전 고검장이 2015년 4월 8일 JTBC와 한 인터뷰의 요지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힌 최환 전 부산고검장과 영화 『1987』에서 최환 검사 역을 맡은 영화배우 하정우. [‘지금 우리에게 1987이란’ 영상 캡처]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힌 최환 전 부산고검장과 영화 『1987』에서 최환 검사 역을 맡은 영화배우 하정우. [‘지금 우리에게 1987이란’ 영상 캡처]

최환, 경찰의 사건 은폐 막은 주인공

“1987년 1월 14일 정오쯤 박종철 군이 사망했습니다. 그날 저녁 7시 40분경 대공수사팀에서 저한테 변사사건 처리 지휘를 받으려고 왔어요. 내놓은 보고서가 A4 용지 두 쪽짜리. 고문 이야기는 전혀 없었어요.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는 그 내용이 나옵니다. 이틀 후 치안본부장이 공식적으로 그렇게 또 발표했고요. 말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보고서를 읽자마자 직감적으로 ‘고문으로 죽었구나’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대공수사팀에서 ‘오늘(14일) 밤 안으로 화장(火葬)할 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 승낙 도장을 찍어주면 바로 화장해서 뼛가루를 부모한테 인계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거부했어요. 부검을 하고 확실한 근거 아래 결론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사방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압력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전화였어요. 대공수사팀의 뜻대로 화장을 하라는 요구였는데 저는 끝까지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시신을 찾아서 부검하기까지 곡절이 많았어요.”

최 전 고검장이 경찰의 화장을 통한 사건 은폐 시도를 막은 다음 날 신성호 당시 중앙일보 법조팀 기자의 보도를 시작으로 진실이 한 꺼풀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연상 당시 검안의는 언론에 박종철 열사를 상대로 한 물고문 정황을 알렸다. 거짓 발표를 하며 버티던 경찰은 결국 고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은 같은 해 6월 민주화 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27년간 군부독재의 종식, 대한민국의 민주화로 이어졌다.

6월 10일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고(故) 박종철 열사가 경찰의 고문을 받다 숨진 곳이다. 뉴스1

6월 10일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고(故) 박종철 열사가 경찰의 고문을 받다 숨진 곳이다. 뉴스1

아들 최용훈도 인권보호 최일선 검사로

민주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최 전 고검장. 그를 뒤따라 큰아들은 1998년 3월 검사가 됐다. 최용훈(49·사법연수원 27기) 검사다. 두 명이 ‘현직 부자(父子) 검사 1호’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최 검사는 수원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2010년 8월 성남지청 부부장검사, 2015년 2월 인천지검 외사부 부장검사, 2018년 7월 진주지청장 등을 거쳐 현재 서울고검 검사로 일하는 중이다.

최 검사는 최근 또 의미 있는 인사발령을 받았다.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통해 오는 7월 2일부터 대검찰청 인권정책관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6월 “사건 관계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을 대검에 설치하라”고 지시하면서 대검 인권부가 신설됐고 지난해 하반기 직제개편으로 인권부가 폐지, 인권정책관실로 대체됐다. 최 검사는 앞으로 검찰 내 인권보호 업무를 총괄하게 된다. 최 전 고검장의 대를 이어 인권보호의 최일선 검사로 활동하는 것이다.

세대가 바뀐 만큼 인권보호의 무게중심은 다르다. 최 전 고검장이 경찰의 인권침해에 맞섰다면 최 검사는 주로 검찰의 인권침해에 대응하게 된다. 시간이 34년가량 흐르는 동안 검찰의 통제권한 강화로 경찰의 고문 조사 같은 폐해가 거의 사라졌지만 반작용으로 검찰 일각에서 표적·먼지떨이 등 수사 관행 문제가 불거진 영향이다.

검찰 관계자는 최 검사의 대검 인권정책관 발탁 배경으로 “검사 생활 대부분을 특별수사 부서가 아닌 형사부에서 보냈고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주UN법무협력관으로 일하며 선진국 수사기관들의 인권 수사 관련 경험을 풍부하게 쌓았다”고 평가했다.

최 검사는 중앙일보의 인터뷰 요청에 “아버지와 저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지만 사정상 인터뷰에 응하지 못해 죄송하다”라고 사양했다. 그는 주변에 “앞으로 피의자와 피해자, 목격자 등 다양한 사건 관계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힘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고 한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