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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빚 갚을 돈으로 또 선심성 퍼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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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오른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29일 올 2차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당정 협의안을 발표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오른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29일 올 2차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당정 협의안을 발표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끝내 돈 뿌리기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어제 소득 하위 80%에게 1인당 25만~30만원씩의 코로나19 위로금(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위해 33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기로 했다. 기정예산(이미 확정한 예산) 3조원을 추가하면 총 36조원으로, 지난해 3차 추경(35조1000억원)을 넘어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정부는 당초 전 국민 지급을 주장하는 여당과 달리 소득 하위 70% 선별 지급을 검토해 왔지만 결국 80% 선에서 타협했다. 이 기준대로라면 연 소득 1억원이 넘는 4인 가구도 지원금을 받게 된다. 민주당은 빚(국채 발행)을 더 내지 않고 올해 들어 더 걷힌 세금 33조원을 활용한다는 이유로 역대 최대 규모 추경 편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적잖은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정, 국민 80% 위로금 주려 33조 추경 #돈줄 조이겠다는 한은과 정책 엇박자

무엇보다 시기가 좋지 않다. 정부가 올해 성장률을 3%대에서 4.2%로 대폭 상향 조정할 만큼 경기가 회복 추세를 보이는 데다 시중에 돈이 넘쳐 흐르면서 지금 우리 경제는 인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2.6%)이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연 2%)를 훌쩍 뛰어넘으면서 시장금리도 덩달아 상승 추세다. 이런 와중에 수십조원의 거액을 풀었다가는 물가 인상과 시장금리 상승 속도를 더 빠르게 할 수도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연내 금리 인상을 공식화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가계부채가 가파르게 늘고 자산 거품 붕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한은은 돈줄을 조여 부채 축소에 나섰는데 정부는 거꾸로 막대한 추경 편성으로 돈을 풀겠다니 정책 혼선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도 논란거리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달 초 재난지원금용 추경을 공식화하면서 “더 걷힌 재정 여력을 국민에게 돌려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정운용 원칙을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근시안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국가재정법상 초과 세수는 국가채무 상환에 먼저 쓰게 돼 있다. 코로나 이후 정부 지출 규모가 커지면서 올해 적자만 100조원에 근접하는 등 나랏빚 1000조원 돌파가 눈앞이다. 올해 세금이 당초 예상보다 33조원 더 들어온다고 해도 여전히 70조원 가까운 막대한 빚이 남아 있는 만큼 초과 세수는 빚 갚는 데 우선 쓰여야 한다. 그런데 이를 재난지원금으로 시중에 풀어버리면 재정 건전성 개선은 없이 자산 양극화 같은 부작용만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지급 대상 80%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아주 적은 소득 차이로 대상자가 엇갈리거나 소득이 그대로 노출되는 봉급생활자(건보 직장가입자)가 더 손해를 볼 경우 불필요한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