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김원웅 광복회장의 그릇된 역사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원웅 광복회장 [연합뉴스]

김원웅 광복회장 [연합뉴스]

김원웅 광복회장이 “해방 이후 한반도에 들어온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고 발언했다. 극도로 편향된 역사인식을 또 한번 드러낸 발언이다. 더구나 그 대상이 이제 한창 역사 지식을 습득하며 역사관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고등학생들이란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고교생에게 “미군은 점령군, 소련은 해방군” #사실 왜곡과 선동…독립유공자 자격 논란도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란 인식은 심대한 역사 왜곡이다. 1945년 8·15 해방은 일제의 무조건 항복에 따른 것이었다. 항복을 받아낸 주체는 연합국인데, 그 주력은 미국이었다. 소련은 불과 일주일 전인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를 하며 극동전선에 끼어들었다. 이미 전황이 일본의 패전으로 기운 뒤의 일이다. 어느 쪽이 한민족의 ‘해방’에 기여도가 큰지는 따져볼 필요조차 없다. 그 이후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북에 각각 진주해 일본군을 무장해제시켰다. 이를 표현하는 군사적·정치적 용어가 ‘점령’이고, 공식 문서에 양측 모두 ‘occupation’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 면에서 미군도 소련군도 모두 ‘점령군’이었다.

더구나 소련의 뒤늦은 참전과 북한 지역 진주는 ‘해방’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 소련은 한반도에 공산정권을 수립하고 위성국가화하려는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 사후 해석이 아니라 소련 붕괴 후 공개된 기밀문서들에서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김 회장의 말처럼 당시 소련 포고문에 ‘조선인의 운명은 향후 조선인들이 하기에 달렸다’는 표현이 나오지만 소련은 스스로 그 말을 지키지 않았다. 그들이 북한 지도자로 내세운 김일성은 스탈린의 승인과 지원을 등에 업고 6·25 남침을 감행했다. 북한은 이를 ‘조국해방전쟁’이라 부른다. 김 회장이 말한 해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밝힐 것을 촉구한다. 김 회장은 맥아더의 포고령에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란 표현이 나온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북위 38도선 이남을 오늘부터 점령한다’는 말이 나올 뿐이다. 마치 미국이 일본을 대신해 한국을 무력으로 식민지배하기 위해 온 것 같은 인식을 심어주는 왜곡이자 선동이다.

김 회장을 둘러싼 분란은 끝이 없다. 최근에는 김 회장 부모의 독립유공자 자격에도 의혹이 제기됐다. 부친의 공적 기록이 동명이인 독립지사의 공적과 뒤바뀌었을 가능성에 대해 김 회장 본인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모친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혹이 있다. 보훈처는 엄정한 조사를 통해 진위 논란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광복회 내부의 분란도 심각하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는 구심점이어야 할 광복회가 시정잡배보다 못한 꼴사나운 소동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이 모두가 김 회장이 취임한 뒤 일어난 일이다. 과연 그에게 광복회를 이끌어 갈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