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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문발차(開門發車), 도쿄올림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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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지난 일요일 도쿄올림픽 선수촌을 언론에 처음 공개하는 행사가 있었다. 집합 장소에 일찍 도착했는데도 이미 현장엔 국내외 취재진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따위는 온데간데없었다.

다들 꼬깃꼬깃해진 종이 한장을 들고 있었다. ‘발열 증상 없음’을 체크하는 서약서다. 가짜 정보를 써넣어도 확인할 방법이 없는 휴지쪼가리다. 접수 데스크로 가니, 서약서를 담아두는 종이 상자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저절로 드는 생각. “QR코드로 처리했더라면 이 많은 종이와 인원 없이도 쉽게 할 수 있었을텐데….”

도쿄 올림픽은 이미 시작됐다. 해외 취재진이 모여든 모습을 보니 올림픽이 실감이 났다. 일본 사회도 올림픽 개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しようがない(어쩔 수 없다)”는 체념도 섞여 있다. 여론조사의 질문 항목은 “올림픽 개최에 찬성이냐, 반대냐”에서 “무관객으로 한다면 찬성이냐”로 은근슬쩍 바뀌었다. 조사 결과가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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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관한 논쟁은 논점이 미묘하게 빗나가고 있다. 선수촌의 코로나19 대책만 해도 그렇다. 선수촌에선 1만8000명이 생활하는데 코로나 대응 시설은 진료실 2개가 딸린 가건물 진료소가 전부다. 올림픽 조직위는 선수촌의 상주 의료진이 몇명인지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식당·숙소에 발열체크 기계도 없을뿐더러, 동선 관리도 안된다. 확진자가 나오면 밀접접촉자가 누구인지, 확진자의 기억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일본 안에서 논쟁은 “선수촌에 왜 술을 허용하나”로 모아졌다. 국민들은 코로나가 번질까봐 술도 못 팔고 있는데, 그러다가 선수촌발 코로나가 확산하면 어떡하냐는 것이다. 음주가 나쁜 것이 아니라 음주조차 할 수 없는 허술한 방역행정이 문제의 본질인데 말이다.

외국 선수를 대하는 시선도 그렇다. 지난주 입국한 우간다 선수단 중에서 2명째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첫 확진자가 나온 뒤 사흘이나 지나서야, 비행기에서 주변 좌석에 앉았던 선수 8명을 밀접접촉자로 지정하는 등 방역은 뒷북이었다. 그런데 외국 선수 때문에 코로나가 대거 확산되는 거 아닌지 불안하다는 뉴스가 나온다. 문제는 외국 선수가 아니라, 올림픽을 열겠다면서 확진자를 판별하지도 격리하지도 못하는 3류 방역시스템인데도 말이다.

올림픽 버스는 이미 출발했고, 일본 정부는 일단 달리면서 대책을 마련해간다는 방침이다. 나카지마 다케시 도쿄공업대 교수는 “1964년 도쿄올림픽이 일본의 발전을 상징했다면, 이번 올림픽은 일본의 쇠퇴를 상징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픈 지적이다. 개문발차는 위험하다.

윤설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