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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장 갇힌 생후 16주 비글들, 마취없는 수술 영상에 발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국에서 한 실험견 사육농장 내부를 찍은 영상이 공개돼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캠브리지셔주 허팅턴의 사육 농장 MBR에이커스 관계자들이 실험견으로 투입될 비글 수십마리를 담은 철장을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영국 동물단체 Stop animal cruelty Huntingdon 페이스북 영상 캡처]

영국 캠브리지셔주 허팅턴의 사육 농장 MBR에이커스 관계자들이 실험견으로 투입될 비글 수십마리를 담은 철장을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영국 동물단체 Stop animal cruelty Huntingdon 페이스북 영상 캡처]

21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미러와 동물보호단체 ‘SACH’는 캠브리지셔주 허팅턴에 위치한 사육장 ‘MBR에이커스’에서 찍은 영상을 공개하고 동물 실험 실태를 고발했다.

영상에는 이 농장에서 태어난 생후 16주 된 강아지들이 신약과 농약 등 화학제품 개발을 위한 ‘실험견’으로 투입되는 일련의 과정이 담겼다.

영상을 보면 농장 관계자들은 강아지의 목덜미를 잡아채 철장 안에 밀어 넣는다. 강아지들은 좁은 철장 안에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농장 트럭에는 강아지로 가득 찬 철장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영국 캠브리시셔주 허팅턴의 사육농장 'MBR에어커스'에서 직원들이 생후 16주 된 비글을 철장 속으로 옮기고 있다. [영국 동물단체 Stop animal cruelty Huntingdon 페이스북 영상 캡처]

영국 캠브리시셔주 허팅턴의 사육농장 'MBR에어커스'에서 직원들이 생후 16주 된 비글을 철장 속으로 옮기고 있다. [영국 동물단체 Stop animal cruelty Huntingdon 페이스북 영상 캡처]

미국 최대 실험견 생산업체인 ‘마셜 바이오리소스’가 소유한 이 농장에선 매년 1600~2000마리의 강아지를 영국 전역의 실험실로 보낸다.

SACH는 이 업체가 실험견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공장식 축산’ 방식으로 강아지들을 생산하고, 주삿바늘 꽂는 연습을 하는 등 가혹 행위를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실험견’으로 주로 투입되는 견종 ‘비글’의 피해가 심각하다고 SACH는 지적했다. 낙천적인 성격에다 나쁜 기억은 쉽게 잊고 참을성도 강해 실험견으로 주로 투입된다는 게 동물보호가들의 설명이다. 실험견 공급을 위해 운영되는 이 공장도 비글만을 생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동물보호단체 SACH가 입수해 공개한 신약 개발을 위한 동물실험 현장. 실험견의 눈을 가리고 개발 중인 화학 물질을 투입하고 있다. [영국 동물단체 Stop animal cruelty Huntingdon 페이스북 영상 캡처]

영국 동물보호단체 SACH가 입수해 공개한 신약 개발을 위한 동물실험 현장. 실험견의 눈을 가리고 개발 중인 화학 물질을 투입하고 있다. [영국 동물단체 Stop animal cruelty Huntingdon 페이스북 영상 캡처]

SACH가 공개한 영상에는 실험에 투입된 비글의 모습도 찍혔다. 영상에서 비글은 눈이 가려진 채로 화학물질을 강제로 들이마시고, 다리가 묶인 채 주사를 맞는다. 일반적으로 마취제나 진통제를 투여하지만, 마취제가 실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마취 없이 수술이나 실험을 강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SACH는 전했다.

이처럼 신약 개발 실험에 투입된 비글은 약 28~90일간 화학 물질에 노출된다. 이후 화학 물질들이 비글의 간·신장·폐·심장·신경계 등에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측정한 뒤 생을 마감한다.

SACH는 “실험견 비글은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태어나 실험실에서 삶을 마감한다”면서 “실험을 위한 비윤리적 동물 사육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한 신약 개발 실험실에서 강아지를 매단채 약물을 투여하고 있다. [영국 동물보호단체 Stop animal cruelty Huntingdon 페이스북 영상 캡처]

영국의 한 신약 개발 실험실에서 강아지를 매단채 약물을 투여하고 있다. [영국 동물보호단체 Stop animal cruelty Huntingdon 페이스북 영상 캡처]

영상이 공개되자 MBR에이커스 측은 “법적으로 문제없다”며 즉각 반발했다. 농장 측은 “영국은 신약 출시 전 설치류 1종, 비(非) 설치류 1종을 대상으로 동물 실험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비 설치류에 강아지가 사용되는 건 흔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2019년 기준 영국에서 신약 실험에 사용된 강아지는 4227마리로, 그중 비글이 96%를 차지했다”면서 “우리 농장은 수준 높은 동물 복지 기준을 따르고 있어 문제 될 것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영국 동물 보호단체 SACH 회원들이 동물 실험 반대 시위를 열고 있다. [영국 동물보호단체 Stop animal cruelty Huntingdon 페이스북]

지난 12일(현지시간) 영국 동물 보호단체 SACH 회원들이 동물 실험 반대 시위를 열고 있다. [영국 동물보호단체 Stop animal cruelty Huntingdon 페이스북]

하지만 영국 내에서는 이번 영상 공개로 동물 실험에 대한 윤리 문제를 놓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미러에 따르면 영국 하원 175명은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의 조언을 받아 정부에 청문회를 열자고 제안한 상태다. 이들은 개를 포함한 동물 실험으로 인간의 약물 반응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과학계의 주장을 엄격하게 따져보고 확인해 봐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민정 기자·장민순 리서처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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