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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마저 안 볶고 굽는다…"한국인 미식 수준 프랑스인 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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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시그니엘 서울의 프렌치 레스토랑 스테이에서 선보인 오일 아티 초크. 사진 롯데호텔

시그니엘 서울의 프렌치 레스토랑 스테이에서 선보인 오일 아티 초크. 사진 롯데호텔

능이버섯 깻잎 파스타, 대청도 홍어, 수박 위에 올린 캐비아, 맑은 한우 양지육수의 신선로…

길어진 코로나19 사태에 해외여행 길은 막혔지만, 미식가를 위한 외식 문화는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 과연 한국을 비롯한 세계 소비자들의 입맛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호텔에서 바캉스를 보내려는 ‘호캉스족’들에게도 음식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시그니엘 서울,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서울신라호텔 등 5성급 호텔 4곳의 총주방장이 말하는 올여름 미식 트렌드와 반드시 먹어봐야 할 메뉴를 정리했다.

호텔별 셰프가 추천하는 메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호텔별 셰프가 추천하는 메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미식 트렌드는 어떻게 변하고 있나.  
시그니엘 서울 스테이 최해영 셰프. 사진 롯데호텔

시그니엘 서울 스테이 최해영 셰프. 사진 롯데호텔

최해영 셰프 : 아무래도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제철 식재료가 뜨고 있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능이버섯과 들깨를 활용한 파스타를 선보였다. 반죽에 능이가루, 들깻가루, 굵게 다진 들깨를 넣은 뒤 면을 뽑는데 흑임자로 단맛을 보충했다. 여기에 깻잎 거품과 오일, 들기름을 더했다. 프랑스 현지에서도 건강을 위해 버터의 사용을 줄이고 오일로 대체하는 추세다.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 더 그레이트 홍연 주방장 왕홍룡. 사진 조선호텔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 더 그레이트 홍연 주방장 왕홍룡. 사진 조선호텔

왕홍룡 셰프 : 음식 자체뿐 아니라 경험까지 고려한 미식 소비가 늘었다. 이 때문에 공간의 구성과 음식의 맛, 음식을 담아내는 모양새까지 고려한다. 기존 중식이 가지고 있는 ‘칼로리가 높다’는 인식도 깨고자 한다. 튀김·볶음 메뉴의 조리법을 굽거나 찌는 방식으로 바꿔 재료 본연의 맛이 나도록 했다. 또 고기 대신 참송이버섯이나 이슬송이, 황제버섯 등을 활용한다.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에티엔 트루터 셰프. 사진 페어몬트 앰배서더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에티엔 트루터 셰프. 사진 페어몬트 앰배서더

에티엔 트루터 셰프 :고소득 고객들은 부쩍 프리미엄 요리에 관심을 나타낸다. 맛뿐 아니라 장소·날씨·경치 등 모든 요소에 집중하는 소비자가 늘었다. ‘페어몬트 마리포사(호텔 29층 레스토랑)’도 지난 5월부터 테라스를 열어 여의도 한강공원과 도심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신라호텔 라연 김성일 셰프. 사진 호텔신라

서울신라호텔 라연 김성일 셰프. 사진 호텔신라

김성일 셰프 : 코로나19 영향으로 지난해부터 비즈니스 보다는 개인, 가족 등 작은 모임이 많아졌다. 건강식에 대한 관심도 커져 제철 식자재, 보양식, 친환경, 비건(채식) 등 고객의 선호와 요청사항도 세심하게 변하고 있다. 회식이 줄면서 술 섭취는 가급적 줄이려 하고, 무알코올의 과일 향 샴페인을 찾는 고객이 늘면서 채식주의자를 위한 비건 메뉴와 무알코올 음료를 내놓고 있다.
한국 소비자의 입맛을 어떻게 평가하나   
최해영 셰프 : 한국인의 미식 수준은 이제 콧대 높은 프랑스인 입맛 못지않다. 미식 취향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특정 레스토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일명 ‘시그니처 메뉴(대표 메뉴)’를 찾는 고객들도 늘었다. 단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고객을 만족시켜 드리려면 셰프는 현장에서 더욱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에서 반드시 먹어봐야할 산해황. 사진 조선호텔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에서 반드시 먹어봐야할 산해황. 사진 조선호텔

왕홍룡 셰프 : 한국인의 입맛은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국내외 ‘맛집’을 혹독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한국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는 게 가장 어렵다. ‘더 그레이트 홍연(조선 팰리스의 중식당)’에서는 딤섬과 바비큐 담당 셰프를 해외 현지에서 영입했고 5가지의 ‘시그니처 티’를 개발해 차(茶)와 함께 즐길 수 있게 했다.  
에티엔 트루터 셰프 : 한국의 미식 수준은 아시아 최고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인은 새로운 맛이나 요리법에 대한 경험에 매우 적극적이다. 더구나 전통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크기 때문에 각 지역의 식재료가 얼마나 신선한지 꼼꼼히 따지고 있다.  
페어몬트에서 추천하는 캐비아 요리. 수박 사이에 게살 타르타르를 넣고 캐비아를 올렸다. 사진 페어몬트

페어몬트에서 추천하는 캐비아 요리. 수박 사이에 게살 타르타르를 넣고 캐비아를 올렸다. 사진 페어몬트

김성일 셰프 : 이제 셰프가 아닌 소비자가 트렌드를 주도하는 시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식문화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 고급 식당의 메뉴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었다면, 지금은 여기에서 나아가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된 신선하고, 귀한 식자재인지’가 고객의 주요 관심사로 자리 잡고 있다. 
셰프로서 어떤 요리를 추구하며, 꼭 맛봐야 할 요리는 무엇인가
최해영 셰프 : 프랑스에서 한국인이라는 뿌리 위에 현지의 요리 기법을 더했다면, 지금은 프랑스 전통 음식에 한국 식재료를 접목하려 한다. 최대한 제철 식재료로 현재의 순간을 접시에 담아내고 싶다. 꼭 맛봐야 할 요리로는 ‘빠떼(파이에 고기·생선·채소 등을 갈아 만든 소를 채워 구운 프랑스 요리)와 홍어’ 요리를 추천한다. 홍어는 대청도에서 수급되는 선어를 사용하고, 그르노블루아즈 소스(겨자 같은 매운맛이 나는 향신료와 레몬즙 등이 들어간 소스)를 이용한 조리 방법으로 제철 유기농 당근과 회향(미나리과 식재료)으로 만든 고명을 곁들여 낸다. 
페어몬트 1층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벌꿀 케이크. 사진 페어몬트

페어몬트 1층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벌꿀 케이크. 사진 페어몬트

왕홍룡 셰프 : 중식이라는 틀을 깨고 싶다. 일식의 부드러운 전복찜, 양식의 수비드(저온의 물속에서 오랫동안 데우는 조리법)나 비스크 소스(랍스터·게·새우 등의 껍질을 이용해 만든 소스)에, 한식의 나물을 활용하는 방식을 연구 중이다. 추천 요리로는 포도주를 발효한 중국 술을 활용해 만든 홍주 탕수육을 권하고 싶은데, 돼지 오겹살의 살코기 부분만을 얇게 저며내 바삭하면서도 소스의 새콤한 맛이 일품이다. 산해황은 산(山)과 바다(海)에서 나는 귀한 식재료를 이용해 황제(皇)을 위해 만든 음식으로, 여름철 보양식으로 좋다. 
에티엔 트루터 셰프 : 요리를 즐기는 순간은 소중한 추억이 돼야 한다. 추천 메뉴인 캐비아는 페어몬트 대표 메뉴다. 지난 2월 섬진강 캐비아 생산 업체와 업무협약을 맺어 최고급 국산 캐비아를 공급받고 있다. 국내산 꿀을 활용한 차 세트와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비건 빵도 인기다. 
시그니엘 호텔 프렌치 레스토랑 스테이에서 추천하는 빠떼와 홍어. 사진 롯데호텔

시그니엘 호텔 프렌치 레스토랑 스테이에서 추천하는 빠떼와 홍어. 사진 롯데호텔

김성일 셰프 : 제철에 나오는 신선하고 귀한 식재료를 최대한 신선하게 확보해 주재료의 맛을 섬세하게 살리려고 한다. 꼭 맛봐야 할 메뉴로는 신선로를 추천한다. 신선로는 용기의 이름인데 미나리·육전·새우 등 다양한 재료들이 맑게 뽑아낸 한우 양지 육수와 어울려 조화로운 맛을 낸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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