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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감정 탓 역전패, ‘우즈 10야드 규칙’ 새겨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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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호 24면

즐기면서 이기는 매직 골프

US여자오픈에서 역전패를 당한 렉시 톰슨은 지나간 실수를 잊지 못하고 다음 샷 결과를 미리 걱정하다 실수가 이어졌다. [AFP=연합뉴스]

US여자오픈에서 역전패를 당한 렉시 톰슨은 지나간 실수를 잊지 못하고 다음 샷 결과를 미리 걱정하다 실수가 이어졌다. [AFP=연합뉴스]

지난 7일(한국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올림픽 클럽 레이크 코스에서 막을 내린 US여자오픈에서 렉시 톰슨은 선두로 출발했다. 대진도 좋았다. 그의 동반자는 경험 적은 10대 선수들이었다. 유카 사소(19)는 LPGA가 아니라 일본 투어에서 뛰는 선수다. 미국 대회는 물론 여자 대회 중 가장 큰 US여자오픈을 부담스러워했다. 메가 가네(18)는 아마추어다. 가네는 첫 홀 더블보기, 두 번째 홀 보기를 했다. 사소는 2, 3번 홀 연속 더블보기를 했다.

톰슨·노먼 자기 페이스 잃고 패배 #엘스, 우즈 공포증 탓 2위 많이 해 #골프는 코스·자신 멘탈과의 싸움 #다른 선수 경기 신경 쓰면 안 돼 #과거는 히스토리, 미래는 미스터리 #현재 집중, 자기 게임 플랜 지켜야

톰슨은 여유가 있었다. 10번 홀까지 5타 차 선두였다. 그러나 11번 홀 페어웨이에서 뒤땅이 나온 후 표정이 굳어졌다. 톰슨은 이후 그린 근처 5m가 넘는 거리에서도 웨지 대신 퍼터를 썼다. 짧은 퍼트도 자주 놓쳤다. 박지은 SBS 골프 해설위원은 “11번 홀 뒤 땅 때문에 부담이 생겨 웨지를 잡지 못한 거로 보이고, 퍼트도 폴로 스루가 전혀 없는 자신 없는 스트로크”라고 했다. 톰슨은 11번 홀 이후 5타를 잃었다. 특히 마지막 두 홀을 모두 보기를 하면서 결국 한 타 차로 연장전에 가지 못했다.

55년 전인 1966년 같은 골프장에서 열린 (남자) US오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최종라운드 아널드 파머는 9홀을 남기고 7타 선두였다. 4홀을 남겼을 때도 5타 차였다. 그러나 이후 거푸 더블보기를 했고 보기가 이어졌다. 파머는 연장전 끝에 패배했다.

골프에서 가장 유명한 역전패는 1996년 마스터스다. 그렉 노먼은 1라운드에서 63타를 쳤다. 코스 레코드였다. 첫날 2타 차 선두였는데, 2라운드 후엔 4타 차로 벌어졌고, 3라운드가 끝났을 때는 6타 차가 됐다. 노먼의 샷과 퍼트가 완벽했기 때문에 그를 따라잡을 선수는 없을 것 같았다.

최종라운드 동반자인 닉 팔도에 7번 홀까지도 4타 차 선두였다. 그러나 9번 홀부터 보기-보기-보기-더블보기가 나와 5타를 잃었다. 이후 노먼의 표정은 참혹했다. 미국 언론은 “장례 절차를 밟는 사람 같았다”고 할 정도였다. 상대인 닉 팔도는 67타를 쳤고, 노먼은 78타를 쳤다. 노먼은 6타 차 선두로 경기를 시작했는데 5타차로 패배했다.

주말 골퍼들도 초반 잘 나가다 급격히 무너지는 경우가 잦다. 그늘집에서 막걸리를 많이 마셔 무너졌다는 핑계가 가장 흔하다. 골프 심리학자 조지프 패런트는 “무너질 것 같으니까 잘 안 맞아야 할 변명을 만드는 일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정신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한국에선 스킨스 내기가 많고 OECD 제도(미리 정해 놓은 일정 액수 이상의 스킨을 따면 선진국이 개도국을 지원하듯 강한 벌칙을 받는 것) 등 때문에 역전패 확률이 높다.

역전패의 덫에 걸리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페이스를 잃고 남의 경기를 따라가서다. 골프는 코스와 자신의 경쟁인데 사람과 싸우기 시작하면 복잡해진다. JTBC 골프 박원 해설위원은 “다른 선수들의 경기와 리더보드 등은 수시로 변하는 변수다. 골프 코스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상수다. 사격할 때 움직이는 타깃(변수)을 향해 쏘는 것과 고정된 타깃(상수)을 향해 쏘는 게임 중 어느 것이 나을지 생각해보라. 게다가 다른 선수들의 게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잭 니클라우스나 타이거 우즈는 상수와 싸우려 했다. 우즈는 “골프엔 두 상대가 있다. 자기 자신과 골프 코스다. (상대 선수가 아니라) 이 둘에 승리하면 잘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물론 우즈라고 이를 다 지키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변수를 제거하고 경기해 뛰어난 업적을 일궜다.

어니 엘스는 경쟁자를 의식하다가 타이거 우즈(아래 사진)의 우승 경기에 가장 많이 2위를 한 선수로 남았다. [AP=연합뉴스]

어니 엘스는 경쟁자를 의식하다가 타이거 우즈(아래 사진)의 우승 경기에 가장 많이 2위를 한 선수로 남았다. [AP=연합뉴스]

반면 변수에 끌려 다닌 대표적 선수가 어니 엘스다. 그는 1998년 유러피언투어 조니워커 클래식에서 우즈에 8타를 앞서다 뒤집혔다. 정상적으로 경기했다면 엘스가 우즈에 8타 차 역전당할 선수는 아니다. 그러나 우즈가 쫓아오자 연거푸 실수가 나왔고, 이후 우즈 공포증에 빠졌다. 그는 우즈가 우승한 대회에서 가장 2위를 많이 한 선수로 남았다. 나이가 들어 힘을 내는 필 미켈슨은 “상대를 이기려 아등바등하다가 기회를 놓친 대회가 많았는데 다른 선수들을 의식하지 않고 코스 공략에 관심을 둔 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마음의 중심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박 위원은 “역전패를 잘 당하는 선수는 감정이 롤러코스터 같다. 버디 하나에 우쭐해지고, 보기 하나에 상심한다면 마음이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가 우울감에 자기 학대를 하는 조울증 환자 비슷한 것”이라고 했다.

어니 엘스(위 사진)는 경쟁자를 의식하다가 타이거 우즈의 우승 경기에 가장 많이 2위를 한 선수로 남았다. [AFP=연합뉴스]

어니 엘스(위 사진)는 경쟁자를 의식하다가 타이거 우즈의 우승 경기에 가장 많이 2위를 한 선수로 남았다. [AFP=연합뉴스]

자신감이 급격히 등락하면 지난 샷에 연연하거나 앞으로 다가올 샷에 대해 미리 걱정하게 된다. 몸은 티잉그라운드에 있지만, 마음은 전 홀 그린이나 페어웨이 벙커에 가 있는 경우다. 샷이 잘 되기 어렵다. 골프 심리학에서 과거는 히스토리, 미래는 미스터리, 현재는 선물(present)이라고 한다.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픈 과거를 잊는 게 쉬운 건 아니다. 우즈는 그래서 실수가 나오면 화를 내서 분출하고, 열 발자국을 걸은 후 모두 잊어버리려 노력한다. 우즈의 10야드 규칙이다.

무너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게임 플랜을 잘 지켜야 한다. 상대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휘둘리게 된다. 동반자가 아이언을 잡는데 난 우드를 잡는 게 창피하고 여겨 무리하다 망가지는 경우 같은 것이다. 박 위원은 “그럴 때 우드를 달라고 자신 있게 큰 소리로 얘기한다면 오히려 상대가 자신의 클럽 선택에 대해 의심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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