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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중 휴대전화 ‘테러’, 스윙 망치고 동반자 눈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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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호 25면

즐기면서 이기는 매직 골프

마스터스 대회 기간 중 코스 내에 설치된 전화 부스. 오거스타 내셔널은 코스 내에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중앙포토]

마스터스 대회 기간 중 코스 내에 설치된 전화 부스. 오거스타 내셔널은 코스 내에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중앙포토]

가장 권위 있는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를 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은 전화를 극도로 혐오한다. 조금 과장한다면 핸드폰을 든 사람은 폭탄을 소지한 테러리스트라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골프장 입구에서 관중들의 가방을 뒤져 핸드폰을 수거한다.

오거스타 등 명문 클럽 엄격 금지 #골프장 입구서 가방 뒤져 수거도 #전화 사용 자유로운 한국 골프장 #업무 처리, 유튜브 즉석 레슨까지 #통화는 짧게 하고 SNS 자제해야 #가끔씩 폰 없는 라운드 괜찮을 듯

기자들에겐 핸드폰이 허용되지만 미디어 빌딩 밖으로 전화를 가지고 나갔다가 발각되면 바로 퇴장이다. 핸드폰은 기사 작성실, 식당, 화장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기자실 곳곳에 “핸드폰은 인터뷰룸, 프레스 빌딩 현관, 빌딩과 프레스 주차장 사이 공간에서 엄격히 금지됩니다”라고 적혀 있다. 경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주차장 가는 길에서도 절대 안 된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본 경기는 물론 연습라운드에서도 예외는 없다. 골프계의 최고 존엄 타이거 우즈도 어림없다. 대신 대회 기간 중 코스 내에 공짜 전화부스를 만들어 관중들이 꼭 필요한 전화는 할 수 있다.

휴대폰 가지고 있다 발각되면 퇴장

오거스타 내셔널뿐 아니라 다른 미국 명문 프라이빗 클럽들도 전화에 매우 엄격하다. 골프 여행가인 존 사비노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골프 클럽에서 플레이하는 방법』이라는 책에 “(명문 클럽에 갈 때는) 핸드폰 혹은 비슷한 전자제품을 가지고 가지 마라. 집이나 차에 두고 나오라”고 충고한다.

다들 핸드폰을 가진 시대인데 골프장 한쪽에 공중전화 부스를 설치한 클럽들이 있다. 핸드폰을 못 가지고 들어가 공중전화를 써야 하는 골프 클럽도 있고,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지만 부스 안에서만 쓰라는 클럽이다. 또한 전화를 할 수 있는 장소는 주차장이나 자동차 안 등으로 한정되고 전화를 쓰다 발각되면 퇴장되기도 한다.

존 사비노는 플로리다 주의 명문 골프장 세미놀에서 의사와 함께 라운드한 경험을 소개했다. 13번 홀에서 골프장 직원이 카트를 타고 달려왔다. 의사든 누구든 라운드 중 핸드폰을 소지하지 못하므로 응급 환자 전화 연락을 전해준 것이다.

휴대폰 발각되면 퇴장

휴대폰 발각되면 퇴장

요즘 한국 골프장이 붐비는 이유 중 하나는 핸드폰 때문이라고 본다. 모바일 폰이 생겨 웬만한 일은 골프장에서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운드하면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꽤 된다. 핸드폰으로 업무 결재와 금융 거래를 하고 주식도 사고팔고, CCTV 앱으로 회사 돌아가는 것을 감시하기도 한다. 특히 여성들은 사진을 찍고 포토샵을 해서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일도 많다.

모든 일상에서 그러듯 핸드폰은 골프라는 게임도 바꾸고 있다. 골프 관련 앱도 많다. 야디지북 앱도 있고, 스윙이 잘 안 되면 유튜브 레슨 동영상을 보는 사람도 있다.

미국 명문 클럽처럼 라운드할 때 핸드폰을 갖고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미국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높고, 핸드폰 불가 클럽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왜 그들이 핸드폰에 질색하는지 이유는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오거스타 내셔널의 현 회장인 프레드 리들리 등 역대 수장들은 “전화로 인한 대화 소리와 다이얼 소리 등의 소음이 플레이에 영향을 준다”며 “전화에 대한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드시 소리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런 클럽들은 무음으로 컴퓨터 기능만 쓰더라도 스마트폰을 허용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골프라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코스를 복잡한 일상생활에서의 탈출구라 생각한다. 핸드폰은 골프장의 평화를 깨는 테러라고 여기는 것이다.

우리도 라운드 중 가능하면 전화 사용을 자제하는 게 좋다. 통화는 짧게 조용히 하고, 속보성이 중요한 게 아니면 SNS에 올리는 건 라운드가 끝난 후 해야 한다. 또한 메시지 등을 너무 자주 확인하면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골프의 중요한 에티켓인데 라운드할 때 동반자 신경 안 쓰고 전화만 보고 있으면 보기 안 좋다. 젊은 골퍼들은 이런 라운드 예절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비즈니스 골프에서 나쁜 인상을 줄 수 있다.

매킬로이 “전화 없이 가야할 곳도 필요”

핸드폰이 골프 스윙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골프 관련 앱이라도 야디지 북 정도는 괜찮지만 너무 많이 쓰면 오히려 혼란하다. 라운드 중 레슨을 받고 잘 되는 사람을 별로 본 적 없다. 라운드 중 레슨 유튜브를 보는 사람들이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 같다. 스윙을 기억하려면 오히려 노트에 적는 게 좋다. 만화가 허영만 씨는 라운드할 때 작은 메모지를 가지고 다닌다. 그는 “핸드폰에 기록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직접 손으로 적은 메모가 훨씬 더 기억이 잘 되고 눈에도 잘 들어온다”고 했다. 위창수 등 일부 선수들은 야디지북에 거리별 스윙 방법을 적어 놓기도 했다.

타이거 우즈는 고루한 오거스타 내셔널의 전화 정책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핸드폰 없는 게 더 좋지 않으냐”고 했다. 로리 매킬로이는 “때론 전화기 없이 가야 할 곳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즈덤 2.0의 설립자이자 진행자인 소렌 고드헤머는 “핸드폰을 끄고 여러분의 마음을 보세요”라고 했다. 디지털 디톡스 운동도 있다. 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 태블릿, 소셜 미디어 사이트와 같은 기술 기기 사용을 자제하는 시간을 일컫는다. 골프장은 디지털 디톡스 장소로 괜찮다. 여건이 된다면 한두 번쯤 핸드폰 없는 라운드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마치 마스터스 대회에 나간 선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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