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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달리기, 건강 위해서라고? ‘어쩌다…’ 하는 마음으로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85) 

끝 모르는 바닥을 두려워 않고 내딛을 때 대지의 모성은 온몸을 튕겨준다. [사진 pixabay]

끝 모르는 바닥을 두려워 않고 내딛을 때 대지의 모성은 온몸을 튕겨준다. [사진 pixabay]

마라톤, 몰아(沒我)톤

일어설 힘만 있으면 한걸음에 뛸 수도
몸 곳곳에 잠복한 궁사들이 팽팽한 시위를 당긴다
등에 멘 큰 활 하나를 기둥 삼아
흔들이는 직립의 균형점을 찾아 헤매고
양발의 작은 활 두 개는
기꺼이 발바닥 밑 중력의 신하가 된다
우주에서 가장 충실한 이끎
변심할 줄 모르고 방향을 바꾸지 않는 힘
그것이 사랑이라면
세상은 사랑의 별똥별 일터
자유낙하에 몸을 맡겨
끝 모르는 바닥을 두려워 않고 내딛을 때
대지의 모성은 온몸을 튕겨준다
이백여 뼈마디가 뒤틀리고 땀구멍마다 진액이 흐른다
젖 먹던 힘마저 목 메임 너머 빠져나갈 때
두 번째 숨을 열어준다
평소 숨죽였던 발바닥 용천혈로
호수처럼 잔잔한 숨을 내쉴 때라야
내가 누군지, 내 의지가 뛰었다는 착각과 뿌듯함이 무너지고
내 안의 유전된 미토콘드리아, 몸들이
동심원의 파문을 일으켜준다
시위 떠난 살처럼 그냥 난다
물빛 머금은 수억 년 통증이 맥놀이로 사라진다

해설

코로나19로 실내운동을 못하게 되자 밖으로 나가 조깅과 마라톤을 시작하는 인구가 늘었다. 사실 달리기는 인간에게 최적화한 운동이다. 진화과정에서 우리 조상은 직립을 선택하면서 어떤 동물보다 오래 달리기에 뛰어난 지구력을 키웠다. 700만 년 전 침팬지와 갈라나오면서 호미닌(사람족)은 땅에 있을 때 네 발로 걷지 않고 두 발로 직립하여 보행하였다. 생태계가 변하자 편하게 일정한 숲에서 과일을 따먹던 습성을 바꾸었다. 숲에서 벗어나 사바나 지역까지 진출해 땅속 뿌리식물을 채취하는 능력을 키웠다. 땅속에 감추어진 음식물을 찾아내는 자연 관찰력과 자유롭게 된 손을 사용하였다. 멀리까지 원정해 채집한 음식물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서식지로 돌아와 온 가족과 나누어 먹었다. 다른 장소에서 먹이를 손으로 획득해 서식지까지 가져와 타인과 나누어 먹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이점이 불의 사용 이전부터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침팬지는 서식지 주위 3㎞ 정도를 맴도나, 호미닌은 10㎞ 넘게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신체구조가 점차 잘 걷고 달리는 데 적응하였다. 동물의 보행방법은 종에 따라 발바닥보행, 발가락보행, 발톱보행으로 나뉜다. 사람만은 발바닥보행 중에서도 특이하게 발바닥 아치(족궁)를 이용하여 걷는다. 건축물에서 아치구조는 하중을 견디는 힘이 세고 안정적이다.

호미닌이 직립보행을 선택하고 꼭 이점만 생긴 건 아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단점도 많았다. 다리가 길어지고 팔이 짧아져 나무를 잘 타지 못하게 되었다. 근력이 떨어져 파워와 순발력이 떨어졌다. 체중이 20㎏에 지나지 않는 침팬지가 몸집이 3.5배나 큰 현생인류보다 2배나 힘이 세다. 즉 힘의 효율이 7배나 차이가 난다. 호모족은 몸에 지방을 더 많이 쌓아 두었기 때문이다. 식사 시간을 줄이고 오랫동안 공복 상태를 견디려고 선택한 결과이다. 그 영향으로 인류가 살이 찌기 쉬운 체질로 바뀐 셈이다. 네 발로 달리는 짐승은 순간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방향전환도 쉽다. 잘 넘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달릴 때 조그만 돌부리에 걸려도 쉽게 넘어지며 직선주로로만 달리기에 맹수에게 만만한 사냥감이었을 것이다.

침팬지와 인간은 발모양이 다른 것뿐만이 아니라 골반과 요추의 구조가 많이 다르다. 침팬지 걸음은 위태로울 정도로 몸통을 좌우로 흔들며 걷는다. 에너지 소모가 그만큼 크다. [사진 pxhere]

침팬지와 인간은 발모양이 다른 것뿐만이 아니라 골반과 요추의 구조가 많이 다르다. 침팬지 걸음은 위태로울 정도로 몸통을 좌우로 흔들며 걷는다. 에너지 소모가 그만큼 크다. [사진 pxhere]

인간은 사냥을 할 때 무리지어 했으며 특정한 사냥감을 무리에서 정확하게 구별해 한 놈만 집중적으로 노렸다. 무늬를 구별해 인식하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네 발 동물은 오래 달리면 앞발의 근육이 호흡근을 눌려 신선한 산소 공급을 방해한다. 체온을 떨어뜨리고 심장박동수와 호흡을 낮추기 위해 잠시 멈추어야 한다. 인간은 횡격막이 몸통 가운데에 있어 연습하기에 따라 사지운동 근육과 별개로 움직일 수 있다. 근육 산소요구량에 적합한 평형상태에 이르면 호흡이 오히려 수월해지는 순간이 온다. 이런 생리적 현상을 ‘세컨드 윈드(second wind)’라고 한다. 두 번째 숨이 열리는 것이다. ‘러너스 하이’는 극도의 근 피로와 고통을 경험할 때 뇌에서 엔돌핀이 분비되는 것으로 그 기전이 다르다.

침팬지와 인간은 발모양이 다른 것뿐만이 아니라 골반과 요추의 구조가 많이 다르다. 인간은 허리뼈가 5개로 침팬지보다 1~2개 많다. 특히 C자 커브를 이루기 위해 3,4번 요추가 쐐기 형태를 이룬다. 앞쪽 면 길이가 뒤쪽보다 긴 쐐기모양을 이룬다. 아치구조에서 가운데 돌이 쐐기모양이라 힘을 지지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골반은 옆으로 벌어져 좌우로 잘 흔들리지 않는다. 대퇴골 두도 길어 흔들림을 잘 지탱한다. 침팬지 걸음은 위태로울 정도로 몸통을 좌우로 흔들며 걷는다. 에너지 소모가 그만큼 크다. 인간은 경추와 요추, 발바닥이 아치구조로 되어 직립에 최적화를 이루었다. 덕분에 인간만이 하늘을 자유롭게 바라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새는 하늘을 날지만 땅을 쳐다보며, 길짐승은 하늘을 쳐다볼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경이롭게 여겼다. 하늘에 별자리 그림을 형상화해 새겨 널 수 있었다. 휘어지는 목뼈 덕분에 별자리라는 가상의 세계를 그릴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동료와 후손에게 자기가 그린 이야기를 신이 나 해주었다.

생명체를 이루는 거의 모든 세포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생명의 발전소라고 부르는 미토콘드리아는 20억 년 전에 숙주세포가 세균 한 마리를 잡아먹었는데, 그만 소화시키지 못하고 세포 안에서 함께 살게 되어 생긴 세포내 기관이다. 미토콘드리아는 한 세포 내에 평균 수백 개가 들어 있다. 이를 통해 산소호흡을 하며 에너지를 생성한다. 자기도 살고 숙주세포도 살게 만든 것이다. 숙주세포와 미토콘드리아는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살아가는 모든 인류의 유전자를 추적하면 모계를 따라 전해 내려온 ‘미토콘드리아 이브’와 만나게 된다. 즉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인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20만 년 전에 탄생해 우리를 길러준 것이다. 우리 몸 안에는 1경 개가 넘는 또 다른 근원의 세포가 공존하는 셈이다.

달리다가 힘들면 걸으면 된다. 처음부터 몇 km를 달리겠다고 결심하지 말고 힘이 들 때까지만 달려보겠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어느 순간 내 몸이 알아서 뛰어준다. [사진 pixabay]

달리다가 힘들면 걸으면 된다. 처음부터 몇 km를 달리겠다고 결심하지 말고 힘이 들 때까지만 달려보겠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어느 순간 내 몸이 알아서 뛰어준다. [사진 pixabay]

우리는 달리기를 굉장히 힘들고 습관들이기 어려운 운동으로 생각한다. 습관에 어떤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이다. 습관을 오래 유지하려면 어떤 거창한 가치를 세우는 것보다 그냥 좋아서 한다는 기분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어쩌다 보니 나는~’하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방해받지 않고 지속된다. 아이들이 오락에 중독되고 스마트폰에 매달려 사는 것이 어떤 거창한 이익이 생겨서 그런 게 아니다. 그저 기분이 좋아 중독에 이른 것이다. 달리기도 마찬가지이다. 건강을 위하거나 살을 빼기 위해 달린다면 목표를 이루었을 때 금세 지치게 된다. 그냥 달리면 기분이 좋아지니 나는 달리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생겼을 뿐이다.

더군다나 달리기는 인간이면 수백만 년 전부터 누구나 할 수 있게 적응되고 진화된 기능이다. 그러니 새삼 어떤 의미 부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뛰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안의 세포와 기능이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니 믿고 맡기면 누구나 달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첫 경험이 서툴고 힘들어서 접근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벽을 느끼는 것이다. 달리다가 힘들면 걸으면 된다. 그러니 처음부터 몇 km를 달리겠다고 결심하지 말고 힘이 들 때까지만 달려보겠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어느 순간 내 몸이 알아서 뛰어준다. 그 고비만 넘기면 누구나 달리기에 입문할 수 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습관이 든다. 쿠션이 좋은 신발과 가벼운 복장이면 준비는 오케이다. 욕심 내지 말고 몸과 대화하며 달려보자. 그럼 건강은 저절로 따라 온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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