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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볼썽사나운 한·일 정상회담 진실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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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12일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만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스가 총리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 [사진 ANN 방송화면 캡처]

지난 12일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만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스가 총리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 [사진 ANN 방송화면 캡처]

한·일 정상회담 불발을 둘러싼 양국 정부 간의 진실 공방과 책임 떠넘기기가 볼썽사납다. 발단은 지난주 말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 간의 회담이 불발된 데 있다. 한국 외교 당국자는 “약식 회담을 하기로 잠정 합의해 놓고 독도 훈련을 핑계로 일본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버렸다”는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반면에 일본 관료들은 “합의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G7서 회담 불발 놓고 감정싸움 치달아 #두 나라 모두에 손해주는 행위 중단해야

분명한 사실은 한국이 회담 성사에 적극적이었고, 일본은 소극적 자세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해법을 마련하지 않는 한 회담에 응하지 않겠다는 일본 입장이 확고해 정식 회담은 어렵더라도 약식 회담은 성사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끝내 불발되고 말았다. 사전합의 여부는 별개 문제라 쳐도 일본이 회담을 거부한 모양새만은 틀림없다.

문제가 일본에만 있는 건 아니다. 설령 일본이 잠정합의를 깬 것이 사실이더라도 그 내막을 한국 정부가 외교 관례를 깨고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공개한 것은 결코 잘한 대응이라 할 수 없다. 정상회담을 둘러싼 외교 채널 간의 물밑 협의를 공개하며 책임 공방에 불을 붙인 것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더 크게 키우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G7 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풀었으면 하는 당초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G7에서 한·일 정상회담 불발을 둘러싼 감정 대립은 7월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문 대통령의 방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외교 경로로 방일 의사를 전달했다는 일본 보도가 먼저 나오자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일제히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본 탓만 할 일도 아니다. 강창일 주일대사는 지난 11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도쿄 올림픽 때 문 대통령의 방일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의 갈등을 빚고 있는 한·일 관계를 이대로 방치하면 장기간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추락할 수 있다. 한·일 간에는 경제 분야뿐 아니라 북핵 해결, 중국 부상에 대한 대응 등 손잡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 양국 정부는 두 나라 모두에 손해를 안겨주는 상황 악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7월 도쿄 올림픽은 대화 복원을 위한 절호의 기회지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일본은 걸어 잠근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한국은 갈등의 원인인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인 해법 마련에 시간이 걸린다면 우선 문 대통령이 해결 의지를 직접 밝히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