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수구레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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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 나라에 부정 식품사가 있다면 아마도 60년대 초의 「수구레 사건」이 그 악명을 가장 오래 간직한 사건이 될 것 같다.
수구레란 소가죽에서 벗겨낸 질긴 고기를 말한다. 그런데 당시의 수구레 사건은 도살장에서 소를 잡아 소가죽을 벗길 때 공업용 약품을 써서 말린 다음 제화 업자들에게 넘기는데, 그 가죽에 말라붙은 살점과 기름덩이를 떼어 시중의 설렁탕 집에 팔았다는 것이다.
말이 수구레지 사실은 구두를 만들 때 떼어낸 군더더기 가죽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시중에서는 현 구두의 소가죽을 끓여 설렁탕을 만들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수구레 사건은 우리가 한참 보릿고개에 허덕이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라 그런대로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이제는 나라 살림도 어지간하고 국민의 건강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웬만한 가정에서는 수돗물도 마다하고 생수를 사먹는가 하면 백화점에는 무공해 식품들이 날개가 팔리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공업용 우지로 라면과 마가린을 만들어 판 5개의 식품 회사 경영주들이 무더기로 구속되었다. 그것도 중소기업이 아니라 입버릇처럼 국민의 건강을 앞세우는 대기업들이라 더욱 분노를 느끼게 한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이 라면과 마가린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같은 우지를 식용과 공업용으로 분류했다면 그 결과는 보나마나다.
한때 항간에는 라면 회사 사장은 자기 가족들에게 라면을 먹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설마…』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번 공업용 우지 사건은 그것을 실증하고도 남는다. 따라서 검찰은 인체 해독 여부를 굳이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에 의뢰할 필요도 없다. 이번에 구속된 라면 회사와 마가린 회사의 경영주들 가정에서 자기네 제품을 얼마나 소비했나 하는 것을 조사하면 될 것이다.
특히 라면과 마가린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식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죄질은 더욱 용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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