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하경 칼럼

‘이준석 현상’의 운명은 이준석에게 달렸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1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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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보수의 얼굴이 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세상을 흔들고 있다.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낀 대중, 특히 2030 ‘MZ세대’는 원내 경험이 없는 36세 정치인의 돌직구에 열광하고 있다. 그는 “공정과 경쟁이 보수의 핵심 가치”라고 선언했다. 평범한 언술(言述)인 것 같지만 조국의 불공정에 포박된 현 정권을 정조준한 승부수다.

조국 불공정이 ‘이준석 현상’ 불러
이대로라면 민주당엔 미래 없어
이준석, 앙시앵 레짐에 선전포고
나의 방식 고집 말고 변해야 성공

‘박근혜 키즈’인 그는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나를 영입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탄핵은 정당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강심장의 정면승부로 지옥 같은 ‘탄핵의 늪’을 통과했다. 대중은 기존의 정치 문법을 거부하고 겁없이 덤비는 이준석에게서 강렬한 유대감과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있다.

그는 앙시앵 레짐으로 전락한 주류 정치에 홀로 선전포고했다. 정치적 메시아를 열망하는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이준석 현상’을 스스로 창조했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유럽의 봉건질서를 해체한 나폴레옹에게는 “마상(馬上)의 세계정신(Weltgeist)”이라는 헌사(獻辭)가 주어졌다. 예나의 36세 철학자 헤겔은 한국의 젊은 전사(戰士)에게도 같은 축복을 내릴 것인가.

국민의힘은 지도부까지 확 달라졌다. 6인 가운데 30대와 여성이 3명씩이다. 탄핵당한 폐가(廢家)에서 다원적 유럽좌파 정당의 면모가 만개(滿開)했다. 586 중심 무풍지대의 꼰대정당 민주당은 ‘클리셰(cliché·진부함)’와 동의어가 됐다. ‘이준석 현상’의 힘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변화하는 조짐”이라고 축하했다. 진심이라면 이준석과 윤석열에게 ‘공정’이라는 신형 무기를 쥐어준 조국의 불공정과 위선을 옹호한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 4·7 재·보선 참패 이후 30대 초선 5인과 송영길 대표의 반성·사과를 조롱한 강성 친문의 민심 역주행도 퇴출시켜야 한다. ‘조국의 시간’이 계속되는 한 민주당의 미래는 없다.

이준석의 능력주의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존재한다. 그는 저서 『공정한 경쟁』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자유다. 정글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다. 약육강식이다. 강자가 다 먹는 세상이다. 미국은 이런 정글의 법칙, 약육강식의 원리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 미국식 자유의 가치를 사회 전반에 받아들이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좌절시키는 ‘정글의 법칙’을 바로잡기 위해 총력전에 나선 현실을 오독(誤讀)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정글 보수주의자가 보수혁신의 아이콘, 세대교체의 기수란 말인가”(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라는 공격을 받는다. 합당한 비판이다.

하지만 대중이 선택한 것은 ‘이준석’이 아니라 ‘이준석 현상’이었다. 대중의 열광은 그의 극단적 능력주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냉소, 여성·청년·호남 할당제 폐지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심과 담을 쌓은 거대한 정치카르텔의 무능과 부도덕에 대한 분노와 심판을 누군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피가 끓었던 것이다. 이걸 혼동하면 이준석도 실패하고, 보수야당도 혁신의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김영삼·김대중·이철승은 1970년 ‘40대 기수론’을 기치로 신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주류 카르텔의 유진산 당수는 “구상유취(口尙乳臭)의 정치적 미성년자들”이라고 평가절하했다(『김대중 회고록』). 시대는 40대 기수의 편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민주화의 구심점이 됐고, 목숨을 건 투쟁 끝에 차례로 집권했다. 이준석이 한 시대를 거머쥐려면 백팩에 공유자전거 따릉이로 출근하는 스타일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치열함으로 허전한 정치적 실체를 채워야 한다.

이성복 시인은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고 했다. 철학자 강신주는 이렇게 해석한다. “(그런 사랑은) 그와 무관하게 결정된 사랑하는 방법을 그에게 실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불행히도 이때 사랑은 폭력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방법을 가진 삶은 삶이 아니다. 미래의 삶을 현재에만 타당한 방법으로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방법을 가진 삶은 박제된 삶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삶에서는 새로운 타자와 마주쳐서 자신이 변화되는 일은 생길 수 없다.”(『김수영을 위하여』 강신주)

몰락한 정치의 공간에 선 이단아(異端兒)에게 거는 대중의 기대가 크다. 그는 당선 수락연설에서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 동참해 관성과 고정관념을 깨달아라”고 했다. 진심이라면 시인의 마음, 철학자의 정신과 만날 것이다.

나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스스로를 유연하게 바꿔 나갈 때 이 지긋지긋한 무능과 부도덕의 아포리아에서 한국정치를 구원할 수 있다. ‘이준석 현상’이 분열과 적대를 청산하고 통합의 광장으로 달려오라는 시대정신과 만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정글의 법칙’을 숭배하면서 정당한 비판에 귀를 닫는다면 ‘이준석’ 현상은 소멸될 것이다. 활시위를 떠난 ‘이준석 현상’의 운명은 이준석에게 달려 있다.

이하경 주필·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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