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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신부님들 감독권한…한국인 첫 교황청 장관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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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유흥식 대주교가 지난12일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뒤 인사하고 있다. 성직자성은 전 세계 사제들의 직무와 생활 업무를 관장한다. [연합뉴스]

유흥식 대주교가 지난12일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뒤 인사하고 있다. 성직자성은 전 세계 사제들의 직무와 생활 업무를 관장한다. [연합뉴스]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70) 주교가 한국인 사상 처음으로 바티칸 교황청의 장관에 임명됐다.

유흥식 대주교 파격 임명, 교황과의 인연도 각별 #이탈리아서 유학·서품, 언어도 능통 #첫 만남때 “한국교회 강해요” 엄지척 #2014년 독대 뒤 한복 성모상 선물 #대주교 이어 추기경 서임도 확실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일(현지시간) 유흥식 라자로 주교를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하면서 대주교 칭호도 함께 내렸다. 교황청 성직자성은 전 세계 사제와 부제의 직무와 생활 업무를 관장하는 부처다. 신부의 사목 활동을 감독·심의하고, 신학교 관할권도 갖는다.

교황청에는 9개 성(省·Congregations)으로 구성된 행정기구가 있다. 각 성의 장관은 추기경이 맡는다. 유 대주교도 성직자성 장관직을 수행하며 추기경 서임이 확실시된다. 지난 4월 정진석 추기경의 선종으로 인해 한국인 추기경은 염수정 추기경 1명뿐이었으나, 다시 한국인 추기경이 2명이 될 전망이다.

유 대주교는 1979년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대 교의신학과를 졸업했다. 사제 서품도 이탈리아에서 받아 이탈리아어에 능통하다. 교황청 고위 성직자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어를 모국어처럼 쓴다. 유 대주교는 대전가톨릭대 교수와 총장을 거쳐 2003년 주교품에 올랐다. 2005년 4월부터 지금껏 대전교구장을 맡고 있다.

500년 역사를 가진 교황청 주요 부처의 장관에 아시아 출신 성직자가 임명된 것은 파격이란 평가다. 이탈리아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사제 서품까지 받은 유 대주교의 이력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유 대주교는 바티칸 교황청 내 인적 네트워크도 상당하다.

유흥식 주교는 지난 2014년 4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하고 한복 입은 성모상을 선물했다. [사진 천주교 대전교구]

유흥식 주교는 지난 2014년 4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하고 한복 입은 성모상을 선물했다. [사진 천주교 대전교구]

유 대주교와 교황의 과거 인연도 주목받고 있다. 2013년 7월 브라질에서 세계청년대회가 열렸는데,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 후 첫 해외방문지였다. 이곳에서 유 대주교는 교황을 만났다. 유 대주교가 이탈리아어로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레아?”라고 되물었다. 유 대주교가 “350명 한국 젊은이들과 함께 왔습니다”라고 했더니 교황은 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왼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어로 “라키에사 코레아나 에 포르테!”라고 답했다. 그건 “한국 교회는 강합니다!”라는 뜻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유 대주교의 첫 인연이었다.

2014년 8월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다. 대전교구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교황 방한을 앞두고 바티칸에서는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시성식이 열렸다. 전 세계에서 1000명이 넘는 추기경과 주교가 로마를 찾았다. 그 바쁜 시기에 유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40분간 독대했다. 유 대주교는 “교황청에서 교황님께 보고했더니 ‘메테레 인 프로그라마’라고 하셨다고 한다. 일정에 틈을 만들어 집어넣으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방문을 앞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각별한 배려이기도 했다.

교황 단독 면담 후에 유 대주교는 한복 입은 성모상을 선물로 드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 마돈나 코리아나!”라고 화답했다. 유 대주교는 자신이 “대전에서 왔다”고 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애전”이라고 발음했다. 유 대주교는 몇 차례나 교황의 “다애전” 발음을 고쳐주었다고 한다.

유 대주교는 12일 기자회견에서 “교황님께서도 북한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북한이 교황님을 초청한다면 북한으로서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며 “바티칸 현지에서도 저의 임명이 북한이나 중국 문제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보도가 나왔다”고 말했다.

◆복수 국적 갖게 될 듯=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시국은 국제법상 엄연한 독립국의 지위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유 대주교의 국적은 바티칸시국으로 바뀌는 것일까.

유 대주교는 일단 한국 국적만 가진다. 유 대주교는 12일 기자회견에서 “장관직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대전교구 소속 주교이고, 바티칸에서 더는 수행할 직책이 없게 될 경우 다시 대전교구로 돌아와 은퇴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다만 유 대주교가 추기경에 서임되면 복수국적자가 될 공산이 크다. 전 세계 모든 천주교 추기경에겐 거주지와 무관하게 바티칸 시국 시민권이 자동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국적법상 한국은 원칙적으로 복수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추기경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별도의 제한 없이 복수국적을 인정해 왔다. 선종한 김수환(스테파노)·정진석(니콜라오) 추기경이 그랬듯, 현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78·안드레아) 추기경도 복수국적자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하준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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