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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어떤 집에 살았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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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호 20면

한국주택 유전자 1·2

한국주택 유전자 1·2

한국주택 유전자 1·2
박철수 지음
마티

아파트·다세대·다가구·단독 #집으로 본 한국사회의 재구성 #건축사가 박철수씨 역작 #미국문서기록청까지 뒤져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2019년 기준으로 전국에는 1813만호의 주택이 있다. 이 중 62.3%가 아파트다. 아파트를 포함해 연립주택, 다세대 주택 등을 아우르는 공동주택은 약 1400만호, 77%에 달한다. 한국인은 언제부터 획일적인 공동주택을 짓고 살아왔을까.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어떤 집이 있었으며, 다른 집을 지으려는 시도는 없었을까.

책은 아파트, 다세대, 다가구, 단독주택으로 쉽게 분류하는 한국 주택의 이력을 쫓는다. 일제강점기 이후 최근까지 거의 모든 집의 기원을 살피면서 구멍이 숭숭 뚫린 역사의 틈을 채우고 잇는다. 그만큼 한국 집의 역사는 지워진 구석이 많았다. ‘낡으면 부수고 빨리 새 아파트’의 공식이 뿌리내린 탓에 과거를 기록하거나 기억하는 일에 박했던 탓이다.

서울 마포아파트는 첫 단지형 아파트였다. 왼쪽 사진은 1965년 항공 촬영 모습. [사진 마티]

서울 마포아파트는 첫 단지형 아파트였다. 왼쪽 사진은 1965년 항공 촬영 모습. [사진 마티]

저자는 그런 한국의 집을 연구해왔다. 한국형 단지 아파트의 탄생 비화를 담았던 『아파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식모 방·장독대 등 잊혔던 주거사와 사물을 연결해 스토리텔링한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 등 숱한 저서가 아파트의 민낯을 알리고 한국의 집을 기록한 명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 백과사전급의 책이 나왔다. 1권 708쪽, 2권 654쪽에 달하는 묵직한 양에 도판만 1150컷에 달한다.

저자의 집요한 기록 수집 덕에 나온 결과다. 저자는 “하나의 주택 유형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문건이나 도면 혹은 사진을 발굴해 세상에 드러내는 일에 제법 치중했다”고 전했다. 국가기록원, 국립민속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미국문서기록관리청을 비롯한 온갖 기관의 문서고를 샅샅이 뒤지고, 옛 신문기사와 소설에서도 한국의 주택을 발라내 이어붙였다. 어느 주말엔가 “월간중앙 89년 1월호에 실린 서울 종로구 내자호텔(미쿠니 아파트) 관련 글 PDF 파일을 구해줄 수 있느냐”는 저자의 전화를 받고 그 열정에 감탄하기도 했다. 저자는 그렇게 잊혔던 한국의 집을 모았다. 그러모은 파편으로 주택으로 살핀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재구성했다. 전체 이미지의 80%가량이 일반 단행본으로는 최초로 공개된다.

서울 마포아파트의 실내 풍경. 1965년 사진으로 추정된다. [사진 마티]

서울 마포아파트의 실내 풍경. 1965년 사진으로 추정된다. [사진 마티]

1960년대 계획된 한국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현재 마포 삼성래미안 아파트로 재건축)는 주거지를 고층화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원래 10층 규모의 아파트 11동(1158가구)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계획과정에서 6층, 10개 동으로 변경됐다. 변경된 이유에 대해 당시 대한주택공사는 미국의 반대와 전력 사정, 기름 부족, 열악한 상수도 등을 이유로 들었다. 왜 미국은 반대했을까. 저자는 국립미국문서기록관리청을 통해 주한 미국 경제협조처(USOM)의 의견서를 입수했다. 경제성을 지적하는 내용도 있지만, 구조설계에 대한 검토가 전혀 없고, 연탄 연기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등 설계 자체가 모든 면에서 미흡하다고 평가하며 반대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당시의 기술력으로 10층 건설은 아직 무리였다.

하지만 마포아파트는 한국 아파트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이 아파트에서 시작된 일(一)자형 주거동의 반복 배치가 이후 본격화됐으며, 입주자들이 계몽하듯 강조했던 아파트의 편리한 생활도 전파됐다. 1970년에 전체 주택 중 아파트의 비중은 0.77%에 불과했지만 곧이어 중산층을 위한 동부이촌동 한강 맨션아파트, 대단지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아파트가 점령하는 시대가 왔다.

아파트가 아닌, 국가 주도의 주택 실험도 1960년대 있었다. 최근 문화재청이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제주 이시돌 목장 테시폰식 주택’이 시험주택으로 서울에도 지어졌다. 제주에서 61년에 지어진 이 주택은 이라크 고대도시 테시폰의 아치 구조물 형태를 참조해 ‘간이 쉘 구조체’ 공법으로 지어졌다. 지붕이 곧 외벽이기도 한 아치형 시멘트 주택이다. 이 집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한 동, 구로동에 20동가량 지어졌다. 경제적이면서 빨리, 많은 집을 공급하기 위해 정부가 63년께 펼친 시험주택사업의 일환이었다.

아파트가 주택의 대명사가 된 지금이지만, 한국 주택 DNA에는 재건주택, 희망주택, 문화주택, 불란서 주택 등 100여 가지에 달하는 집이 있고 그 존재의 이유가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잠잘 곳을 위한 분투의 역사이자, 오늘날 우리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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