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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도 약도 없다, 죽창 들고 싸우나” 올림픽 반대론 확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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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호 27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지난 6일 도쿄에서 한 시민이 ‘감염 올림픽 반대’‘어린이의 감염 동원 반대’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6일 도쿄에서 한 시민이 ‘감염 올림픽 반대’‘어린이의 감염 동원 반대’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3월 초에 다시 한국에 온 다음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도쿄올림픽은 정말 할 건가”라고 물었다. 아사히신문 선배 기자한테 들은 대로 “한다고 하네요”라고 답했다.

14%만 개최 찬성하는데 밀어붙여 #태평양전쟁 때 희생 강요와 닮아 #“운동회도 안 하는데 무슨 올림픽” #SNS에 정부 비판 목소리 퍼져 #스가 “IOC가 이미 개최 결정했다” #작가 아카가와 “양심 걸고 반대”

그런데 지난 5월 26일 아사히신문에 ‘여름 도쿄올림픽 중지 결단을 총리에게 요구한다’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아사히신문은 올림픽 공식 파트너이기 때문에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다. 나도 놀라서 선배한테 전화로 확인했는데 “이런 사설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올림픽은 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 직전에 미국이 일본에 대한 여행 경보 단계를 최고 등급인 ‘여행 금지’로 격상했는데 한국에서는 아사히신문 사설을 보고 올림픽이 중지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던 모양이다.

내 생각엔 아사히신문은 중지하기 어렵다고 알면서도 사설을 쓴 것 같다. 왜냐하면 정치부 선배는 언제 물어봐도 일관되게 “하긴 한다”고 단언했기 때문이다. 안 하는 선택지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중지를 요구하는 사설이 실렸다는 것은 여론의 힘을 입었기 때문인 듯하다.

아사히신문이 5월 중순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도쿄올림픽 개최에 대해 ‘중지’를 원하는 사람이 43%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다시 연기’가 40%, ‘올여름 개최’가 14%였다. 중지 또는 연기를 원하는 사람이 83%를 차지한다는 이야기다. ‘다시 연기’ 또는 ‘올여름 개최’를 원하는 사람 중에 ‘선수들의 노력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선수들을 생각하면 ‘중지’는 안타깝긴 하다.

무관중 개최 땐 경제 효과 별로 없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코로나19 긴급사태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중계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코로나19 긴급사태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중계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안 했으면 좋겠지만 할 것 같다”고 한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 올림픽 티켓을 샀다고 좋아했던 친구한테 지금 심정을 물어봤더니 “연기가 결정됐을 당시 환불받을 수 있었는데 연기돼도 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대로 가지고 있다. 개막이 다음달인데도 아직 볼 수 있는지 모르는 상태라 답답하다”고 했다. 지난 8일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관객 입장’ 문제에 대해 “6월 중에 방침을 공표하겠다”고 설명했다.

나는 3월 초에 한국에 돌아왔기 때문에 그 이후의 일본 현지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는 건 아니다. 2월까지는 도쿄의 길거리에 ‘TOKYO2020’이라고 쓰인 깃발이 여기저기에 있었고 개막까지 며칠인지를 알려주는 카운트다운 전광판도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도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도쿄올림픽이 안전하게 개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직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4월 하순에 세 번째 긴급사태선언이 나오면서 올림픽 개최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긴급사태선언은 연장되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변이 바이러스 감염도 불안한 상태다. ‘일상생활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데 무슨 올림픽이냐’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생인 친구는 “운동회도 중지됐는데 왜 올림픽은 할 수 있는지, 아이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주변에서 이런 불만의 목소리를 들면서 나는 태평양전쟁 때의 ‘갖고 싶어 하지 않겠습니다. 이길 때까지(欲しがりません勝つまでは)’라는 표어가 생각났다. 전쟁에 이길 때까지 가난해도 참고 살자는 표어다.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참아 달라는 식의 일본 정부의 태도가 전쟁 시 국가가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한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런 와중에 5월 11일 출판사 다카라지마샤(宝島社)가 충격적인 광고를 냈다. “백신도 없다. 약도 없다. 죽창을 들고 싸우라는 것이냐. 이대로 가면 정치에 죽임당한다”라는 문구의 광고를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실은 것이다. 태평양전쟁 때 죽창 같은 것을 들고 훈련을 받는 어린 소녀들의 사진이 게재됐다. SNS에 많은 사람이 이 광고를 올려서 나도 한국에서 그날 아침부터 볼 수 있었다. 확진자가 많아지면 국민에게 외출 자제나 영업 자제를 요구하는 ‘비과학적인’ 정부 대책을 비판하는 메시지다. SNS에는 공감하는 목소리가 퍼졌다. 이것이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계기가 된 듯하다.

유명인들도 잇따라 올림픽 개최 중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작가 아카가와 지로(赤川次郎)는 아사히신문 6월 6일자에 ‘올림픽 중지, 그것밖에 길이 없다’는 제목으로 투고했다. “경제는 되돌릴 수 있어도 사람 목숨은 되돌릴 수 없다. 의료도 보도도 각자 양심을 걸고 올림픽 개최에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라고 호소했다.

올림픽 연다면 과학적 대책 내놔야  

지난 3일 도쿄 시내 올림픽링 조형물 앞에서 보안요원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3일 도쿄 시내 올림픽링 조형물 앞에서 보안요원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시민의 안전보다 올림픽 개최가 우선으로 보이는 발언도 개최 반대 목소리가 커지는 원인이다. 그런데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된 상태로도 올림픽은 개최할 수 있다”고 했고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도 “IOC는 개최한다고 이미 결정했다” “나는 주최자가 아니다” 등의 발언을 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정치부 선배가 자신 있게 “어떤 식으로든 하긴 한다”고 단언했던 것도 IOC의 방침 때문이었던 것 같다. IOC의 가장 큰 수입원은 방영권료이기 때문에 무관객 개최의 경우에도 방영권료는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일반 시민들이 기대하는 올림픽 경제 효과는 국내외에서 오는 관객들이 먹고 자고 쇼핑하면서 생기는 소비에서 나오는 것이라서 무관객 개최가 되면 별로 소용이 없다. 무엇보다 관객으로 직접 볼 수 없는 올림픽은 다른 나라에서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개인적으로는 코로나19 유행 전부터 도쿄올림픽 기간엔 도쿄 집에 가지 않고 한국에서 지낼 생각이었다. 그냥 있어도 더워서 힘든 도쿄의 여름, 올림픽 때문에 국내외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오는 것을 피하고 한국 집에서 시원하게 TV로 볼 생각이었다.

코로나19 이전에 도쿄올림픽의 최대 걱정거리는 무더위였다. 선수나 관객의 안전에 관한 중요한 문제다. 마라톤과 경보 개최지가 도쿄에서 삿포로로 변경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왜 굳이 더운 여름에 올림픽을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은 10월에 개최됐다.

여름에 개최되는 건 역시 방영권료 때문이라고 한다. 방영권료를 가장 많이 내는 미국에서 가을에는 많은 스포츠 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그걸 피해서 여름에 한다는 것이다.

반대 목소리를 아무리 내도 올림픽은 멈추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일본사람들이 열심히 반대하는데 안타깝다. 개최를 멈출 수 없다면 적어도 감염 확대를 막기 위해 참가자 전원 백신 접종 등 ‘과학적인’ 대책을 철저히 실시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도 반대 목소리를 계속 낼 필요가 있겠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동국대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2020년 한국에서 에세이집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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