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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수업인데 후배 위해 동아리 갔다···광주 17세 고교생 참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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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10일 오후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재건축 건물 붕괴 사고 현장을 찾은 김부겸(가운데) 국무총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0일 오후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재건축 건물 붕괴 사고 현장을 찾은 김부겸(가운데) 국무총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학교 안 가는 날…" 비극으로 끝난 후배 사랑

"직접 동아리 후배들을 지도한다고 해서 오후에 학교에 나왔다가 집에 가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고2 김모군, 광주 붕괴 사고 최연소 희생자 #곰탕집 60대, 큰아들 생일상 차린 날 참변

10일 오후 광주광역시 한 고등학교. 이 학교 교장은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에 학생과 교사 모두 충격을 받았다"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이 학교는 전날 17명의 사상자를 낸 학동 재건축 건물 붕괴 사고로 숨진 김모(17)군이 다니던 곳이다. 김군은 사망자 9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지난 9일 오후 4시22분쯤 광주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사업 공사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5층짜리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면서 건물 잔해가 정류장에 멈춘 54번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버스에 타고 있던 김군도 참변을 피하지 못했다.

이용섭(오른쪽) 광주시장과 임택(왼쪽) 동구청장이 10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붕괴 사고 희생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김모(17)군의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이용섭(오른쪽) 광주시장과 임택(왼쪽) 동구청장이 10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붕괴 사고 희생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김모(17)군의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교장 "학생들 동요…집단 심리 상담 계획"

학교 측에 따르면 김군은 사고 당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전체가 등교 수업을 해야 하는 3학년을 제외하고 1학년과 2학년이 일주일씩 등교 수업과 원격 수업을 번갈아 가며 하는데, 2학년인 김군이 사고를 당한 날은 2학년이 원격 수업을 하는 첫날이었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교장은 "매주 수요일 5, 6교시는 동아리 활동 시간"이라며 "1, 2학년이 섞여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알려준다"고 했다. 김군은 음악을 공부하는 동아리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교장은 "김군은 (사고 당일) 5, 6교시까지 동아리 활동을 한 뒤 오후 4시쯤 학교에서 나갔다"며 "착하고 학교 생활도 잘하는 평범한 학생이라고 들었다"고 했다.

그는 "저희도 이렇게 충격이 큰데, 부모님은 얼마나 청천벽력이겠나. 어제 보니 몸을 가누시지를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족에게 손이 필요한지 여쭤본 뒤 최대한 돕고, 조문을 원하는 (김군) 친구와 후배들이 조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교장은 "지금은 학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다독이고 일상을 회복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며 "전교생을 대상으로 집단 심리 상담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학동 재건축 건물 붕괴 사고로 숨진 곽모(64·여)씨의 둘째 아들 조모(38·왼쪽)씨와 남편(67). 김준희 기자

학동 재건축 건물 붕괴 사고로 숨진 곽모(64·여)씨의 둘째 아들 조모(38·왼쪽)씨와 남편(67). 김준희 기자

"아들, 생일 축하해. 미역국 끓여놨으니 먹어"  

이날 붕괴 사고 사망자 9명 중 4명의 빈소가 차려진 조선대병원 장례식장도 유족의 울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조모(38)씨는 "사고가 난 직후 가족 단톡방(단체카톡방)에 (사고) 사진이 올라왔다"며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이번 사고로 숨진 곽모(64·여)씨의 둘째 아들이다.

대구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는 조씨는 "아직 어머니를 못 봤다. 사고 현장은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조씨 어머니는 2년 전 오랫동안 일하던 공장을 그만둔 뒤 법원(광주지법) 근처에 곰탕집을 차렸다고 한다.

조씨는 "어머니 혼자서 곰탕집을 운영하느라 고생하셨다"며 "코로나19 때문에 장사가 잘 안 돼 점심 장사만 마치고 시장에 들러 장을 본 뒤 버스를 타고 (집에) 오시는 길에 사고가 났다"고 했다. 30년간 살던 집까지 두 정류장을 앞두고 참변을 당했다고 한다.

조씨는 "사고 당일이 (어머니와 한집에 사는) 형님(41) 생일이었다"며 "어머니가 아침에 나가면서 형님한테 '생일 축하한다. 밥 차려놨으니 먹으라'고 전화했는데, (사고 때문에) 아무도 먹지 못하고 그대로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김치 등 반찬 몇 가지와 미역국을 끓여놨다고 조씨는 전했다.

10일 오후 광주 동구청에 설치된 학동 재건축 건물 붕괴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이용섭 광주시장이 분향한 뒤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후 광주 동구청에 설치된 학동 재건축 건물 붕괴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이용섭 광주시장이 분향한 뒤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자한 어머니…무뚝뚝한 아들" 늦은 후회

조씨는 "한두 달에 한 번씩 광주 집에 오는데, 지난주 일요일 집에서 (어머니를) 본 게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그는 "(대구에) 가기 전 (어머니가) '밥 먹고 가라'고 했는데 안 먹고 갔다. 엊그제 전화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 게 전부인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고 고개를 떨궜다.

그는 "자상하고 인자한 어머니였다. 남들한테는 친절하고 상냥했다"며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이거 해라' 하면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하는 무뚝뚝한 아들이었다"고 했다.

조씨는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간 이번 사고에 대해 "이거(공사)를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나. 철거를 할 때 통제를 해줬으면 이렇게까진 안 됐을 텐데"라며 "행인들은 통제해도, 차량 통제를 안 해버리니 차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죽거나 부상을 입은 게 (아니냐.)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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