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화성 헌법, 공산당 헌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신경진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더 나은 민주주의를 담은 화성(火星) 헌법을 제정하라.”

헬런 랜드모어(45) 미국 예일대 정치학과 교수의 ‘열린 민주주의’ 세미나 과제다. MZ세대인 수강생들은 A4용지 31페이지 분량의 화성 헌법을 만들었다. 얼마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이 내용을 소개했다.

신세대는 민주 정치의 선거 모델은 거부했다. 대신 경제·사회·환경·시민권·정부 감독·성제(星際·인터스텔라) 관계 등 총 여섯 전문분야의 입법을 담당할 ‘미니 퍼블릭(mini publics)’을 만들었다. 공화국을 뜻하는 리퍼블릭에 상응하는 정치 시스템이다.

‘화성 헌법’이 버린 정치는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가 독점해왔던 전통적인 선거다. 대신 통계적 기법을 활용해 무작위로 화성 시민 250명을 뽑아 여섯 개의 미니 퍼블릭에 배정했다. 각각의 미니 퍼블릭은 50명의 대표를 뽑아 중앙위원회를 구성했다. 정부의 예산 승인권과 국회 입법에 대한 거부권을 부여했다.

8일 중국 항저우시 인근에 조성된 공산당 창당 100주년 로고 꽃밭. [AFP=연합뉴스]

8일 중국 항저우시 인근에 조성된 공산당 창당 100주년 로고 꽃밭. [AFP=연합뉴스]

랜드모어 교수는 ‘대의 민주주의’가 아닌 ‘열린 민주주의’ 지지자다. 포퓰리즘도 선거를 버리게 한 이유다. 정치는 다양한 관점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작위 표본 인구의 숫자를 최대로 늘리는 방법을 제시한다. “풀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면 똑같은 생각을 가진 유능한 사람들보다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더 낫다”는 논리다.

화성 헌법의 반대편에 중국공산당 헌법이 있다. 중국은 공화국을 표방하지만 헌법보다 공산당의 헌법인 당장(黨章)이 우선한다. 민주 선거를 거부하기는 화성 헌법과 매한가지다.

곧 창당 100년을 맞는 중국공산당 헌법은 ‘민주집중제’를 따른다. 서열 톱 25명의 정치국이 중앙위원 204명을, 중앙위 전체회의가 당 대표 2280명을, 당 대회가 9191만 당원을, 공산당원이 14억 중국인을 대표하는 피라미드 정치다. 대신 일반 국민의 정치 참여는 배제한다. 공산당 엘리트가 정치를 독점하는 권위주의 헌법이다.

공산당 헌법은 손문(孫文)의 이당치국(以黨治國) 논리와 비슷하다. 손문은 중국 국민을 무능한 촉한(蜀漢)의 2대 황제 아두(阿斗)에 비유했다. 아두는 무능을 깨닫고 유능한 제갈량(諸葛亮)에게 권력을 맡겼다. 손문은 국민당 독재를 제갈량의 통치라며 정당화했다.

내년에는 한국과 중국 모두 각자의 대선을 치른다. 중국의 MZ세대는 이미 아두가 아니다. 미국의 MZ세대는 화성 헌법으로 포퓰리즘과 권위주의를 배제한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한국의 MZ세대는 내년 대선을 좌우할 캐스팅보트다. 그들이 원하는 미래 한국 상(像)에 걸맞은 정치를 쟁취하길 응원한다.

신경진 베이징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