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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시카고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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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종주 워싱턴총국장

임종주 워싱턴총국장

코로나에서 회복해가는 시카고의 초여름 야경은 압권이다. 하늘로 솟은 존 핸콕 센터와 윌리스 타워가 자웅을 겨루듯 불빛을 쏟아낸다. 강변 명소 리버워크는 옥수수 모양의 쌍둥이 빌딩 마리나 시티와 어우러져 현대적 세련미를 더한다. 100년 역사의 시카고 극장은 재개장 약속을 네온사인으로 밝히기 시작했다.

바람의 도시 시카고. 그 화려함 뒤에는 정치적 오명이 어른거린다. 부패 정치의 대명사가 된 ‘시카고식 정치’ 본고장의 어두운 이미지다. 여기서 기반을 다진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그 꼬리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 차례 대선에서 상대 후보 존 매케인(2008년)과 밋 롬니(2012년)는 “오바마가 시카고식 정치를 하고 있다”며 오욕의 역사를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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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도박장에서 싹튼 정치와 폭력의 유착은 1950년대 중반부터 21년간 이어진 리처드 데일리 시장 시절 악명을 떨쳤다. 정치 조직이 매관매직의 온상이 됐고, 측근은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주에선 오바마의 당선으로 비게 된 상원의원직을 팔아넘기려다 탄핵당한 주지사까지 나왔다. 시카고로서는 떨쳐버리고 싶은 굴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시카고식~’ 틀짓기가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첫 동성애 흑인 여성 시장 로리 라이트풋이 지난달, 취임 2주년 인터뷰를 유색인종 기자하고만 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백인은 제외하겠다는 돌직구였다. 시민이 절반 넘게 유색인종인데, 기자는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아 다양성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지역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혐오스러운 반백인주의라는 비난에서부터 노골적 역차별이라는 십자포화가 시장을 덮쳤다. 언론 자유 침해를 이유로 위헌 소송도 제기됐다. 한 정치인의 일탈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며 집단 반발을 부추기는 선동 글이 난무했다. 유색인도 인터뷰를 거부한 쪽과 수용한 쪽으로 엇갈렸다.

인종적 형평성을 개선하기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인종주의는 어떤 형태든 배격해야 한다면서도 지금껏 우월적 지위를 누려온 사람들이 차별의 대상이 됐다고 발끈하는 것은 억지이자 물타기라는 옹호론도 거셌다. 백인을 배제하는 ‘시카고식 인종주의’와 유색인을 억누르는 ‘시카고식 인종차별’, 두 프레임의 대립은 심화하고 있다.

시카고는 백인과 흑인·라틴계가 삼분할하고 있는 수적인 평등의 도시다. 그러나 백인은 미국 평균보다 더 부자지만 유색인 가구의 65%는 자산이 거의 없는 빈곤 위기층일 정도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하다. 미국 3대 도시 시카고의 야경은 보기보다 한층 복잡다단하다.

임종주 워싱턴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