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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약을 잘 팔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대학생 때 지하철에서 겪은 일이다. 건강보조제를 파는 잡상인이었는데, 거의 거저 주는 셈이라며 부모님에게 선물하라며 제품을 들이밀었다. 안 사면 불효자인 거라며 반협박을 하던 게 황당하면서도 불쾌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와 비슷한 느낌을 최근 미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에 실린 글을 보면서 받았다. 한국에서도 활동했던 한 중국 학자의 기고문이었는데, 제목이 ‘한국은 왜 중국 백신을 사지 않는가’였다. 한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제대로 확보 못 하고 있으면서 집요하게 미국으로부터만 공급원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중국 백신이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나라에 보급돼 안정성과 효과가 입증됐는데도 한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중국과 이웃하고 있는 한국이, 그동안 코로나19에 맞서 싸운 중국인들의 성과를 봤는데도 중국 백신에 대한 불신을 좀처럼 버리지 않고 있다는 불만도 터뜨렸다.

한국의 외교적 태도 역시 문제 삼았다. 중간국가(middle power)로서 습관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좁은 지정학적 위치에 자신을 놓음으로써 과감한 조처를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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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렇게 백신을 정치화하면 결국 고통받는 것은 먹구름 속에 살고 있는 평범한 한국 국민이라는 걱정도 잊지 않았다.

물론 한 개인만의 의견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 백신을 받지 않고 있는 대만을 향해 최근 중국 당국이  내놓은 반응을 보면 기고문 내용과 상당히 흡사하다. 2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마샤오광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우리는 대만 민중의 생명과 건강 문제를 매우 걱정한다. 대만 정부는 백신 문제를 정치화하는 행태를 고쳐 빨리 대륙 백신의 수입을 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라”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긴급 사용 승인을 받은 자국 백신을 다른 나라에서 쓰려고 하지 않는 게 서운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나라마다 들쑥날쑥했던 중국 백신의 효과,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 등으로 소비자들의 신뢰가 높지 않다는 점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듯하다.

중국은 그동안 아프리카와 동남아 국가 등에 자국 백신을 공급하며 ‘인도주의’를 강조했다. 인도주의라면 받는 쪽이 기꺼이 받을 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이다. 약을 안 산다고 소비자를 탓하면 그 약은 팔기가 더 힘들어진다.

김필규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