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님? 인삼밭에 계세요”…인삼 찾아 하루 1200km 달려

중앙일보

입력 2021.06.05 08:00

“연구원님이요? 지금 인삼밭에 계세요.” 

김동현(43)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한방과학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인삼 박사’로 불린다. 박사 과정을 마친 뒤 2006년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했고, 10여년을 인삼을 연구하는 데만 바쳤다. 그의 연구 결과로 만들어진 게 바로 인삼을 소재로 한 인기 화장품 설화수 자음생에센스다. 2018년 출시된 설화수 자음생에센스는 3년 만에 누적 판매량 70만병을 넘겼고, 현재는 미국·중국 등 12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잡썰⑬]아모레 설화수 한방과학연구센터 김동현 수석연구원

지난달 25일 경기 용인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에서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한방과학연구센터 김동현(43) 수석연구원을 만났다. 김 연구원 앞에 인삼 표본과 설화수 자음생에센스 제품 등이 놓여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지난달 25일 경기 용인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에서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한방과학연구센터 김동현(43) 수석연구원을 만났다. 김 연구원 앞에 인삼 표본과 설화수 자음생에센스 제품 등이 놓여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연구소보다 인삼밭에서 더 자주 보이는 '현장파'

연구원이지만, 정작 연구소에서 그를 찾기는 쉽지 않다. 앉아있는 시간보다 전국 각지의 인삼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서다. 김 연구원은 “처음 인삼 연구를 맡게 됐을 땐 인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기껏해야 책으로 읽은 게 전부였다”며 “다른 이들과 똑같은 논문과 기사를 읽고 공부하느니, 현장에 나가서 인삼이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눈으로 봐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는 직접 차를 끌고 인삼밭을 쏘다니기 시작했다. 표본으로 쓸 인삼도 직접 골라 연구소로 가져왔고, 채취한 인삼은 하나하나 물로 씻어 말렸다. 아예 출근을 인삼밭으로 하는 경우도 생겼다.

김동현 연구원이 경기 포천의 한 인삼밭에서 인삼 뿌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김동현 연구원이 경기 포천의 한 인삼밭에서 인삼 뿌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그렇게 전국의 인삼밭을 돌아다니기를 10년. 그는 “하루에 많을 땐 1200㎞까지 운전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강원, 경상, 대구, 전라, 광주의 인삼 재배 농가와 시험포 등 총 6~7곳을 찍은 일정이다. ‘굳이 직접 밭을 찾아갈 필요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농가를 찾아가 직접 캔 걸 가지고 실험해야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생긴다”며 “인삼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추출 기술 등은 기본이고 인삼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자라고 유통되는지 등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해진 농부들도 생겼다. 인삼을 채취하러 갔다가 막걸리를 얻어먹고 자고 오기도 하고, 샘플로 받은 인삼이 화장품으로 만들어지면 사서 갖다 주기도 한다. 그는 “같이 농사 짓자는 제안을 종종 받는다”며 웃었다.

경기 포천의 한 인삼밭에서 김동현 연구원이 인삼 꽃과 잎 등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경기 포천의 한 인삼밭에서 김동현 연구원이 인삼 꽃과 잎 등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인삼은 음지성 식물이다. 가림막 등 시설과 조건만 갖춰지면 한국 어디서나 키울 수 있다. 김 연구원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 인삼밭이 있다”며 “제주도는 땅이 물 빠짐이 좋아 인삼을 키우기엔 좋은데, 여름에 태풍과 장마가 잦아 재배가 어렵다”고 했다. 인삼 재배에 가장 중요한 건 땅이다. 무기질 함량이나 산도 등에 따라 인삼 성분도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6년근 인삼을 한 번 기르면 땅에 있는 영양분을 다 흡수하기 때문에, 몇 년에서 십수 년 간은 인삼을 다시 못 기른다”며 “그래서 인삼을 기르시는 분들은 여러 밭을 두고 돌아가며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인삼은 식품용 인삼과 차이가 있다. 식품용은 먹음직스러운 모양새가 중요해 주로 뿌리가 굵은 인삼이 선호된다. 반면 화장품용으로 좋은 인삼은 잔뿌리가 많은 인삼이다. 잔뿌리는 인삼의 다른 부위에 비해 사포닌 함량이 높다. 용도에 따라 재배 방식도 달라진다. 식품용은 밭에 일정 간격을 두고 묘삼(어린 인삼)을 심어 기른다. 화장품용 인삼은 직파 방식으로 간격을 두지 않고 씨를 뿌려 키운다. “인삼들이 살아남기 위해 경쟁적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잔뿌리가 많아진다”는 이유다.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자음생에센스에 들어가는 '진세노믹스' 성분 이미지. [사진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자음생에센스에 들어가는 '진세노믹스' 성분 이미지. [사진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자음생에센스에 들어가는 인삼 성분은 ‘진세노믹스’(컴파운드 K)다. 사포닌의 일종으로, 표피 보습력을 강화하고 피부 악화 효소를 억제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 인삼 하나에는 보통 사포닌이 3~6% 들어있는데, 진세노믹스 함량은 1ppm 이하다. 아모레퍼시픽 연구원들은 특정 효소를 활용해 인삼의 다른 성분을 진세노믹스로 전환하는 ‘바이오 컨버전’ 기술을 2000년대 초반 개발했고, 이를 통해 기존보다 6000배 이상의 진세노믹스를 인삼에서 추출할 수 있게 됐다. 추출 성분은 경기 오산 아모레퍼시픽 공장에서 다른 원료들과 배합된다.

설화수 한방과학연구센터 주요 연구원들. 왼쪽부터 차례대로 김동현 연구원, 조가영 연구원, 김현수 연구원, 조정훈 연구원. [사진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한방과학연구센터 주요 연구원들. 왼쪽부터 차례대로 김동현 연구원, 조가영 연구원, 김현수 연구원, 조정훈 연구원. [사진 아모레퍼시픽]

일주일에 2~3번씩은 인삼밭에 나가던 그였지만, 수석연구원이 되면서 현장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 줄었다. 현재 설화수 한방과학연구센터에선 김 연구원을 비롯한 연구진 500여명이 3912가지의 한방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경기 안성엔 연구소가 소유한 400평 규모의 별도 인삼밭도 있다. 김 연구원은 요즘엔 기후와 환경과 상관없이 실내에서 인삼을 기를 수 있는 ‘스마트팜’ 기술과 흙 없이 배양액을 뿌리에 뿌려 인삼을 키우는 ‘분무경’ 재배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고려 인삼의 효능은 이미 여러 고문헌을 통해 밝혀져 왔다. 우리가 가진 자산인 인삼이 단순히 먹는 것뿐이 아니라, 피부에도 좋다는 걸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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