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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댄스영화 주인공, 한국 카바레 ‘제비’ vs 일본 월급쟁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56)

나는 일본 영화 ‘쉘위댄스’를 열 번도 넘게 봤다. 볼 때마다 새롭고,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영화다. 일본에서 1996년 개봉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개봉되었다. 흥행 면에서도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둬 당시 16억 엔의 수익을 올리면서 일반인의 댄스스포츠 붐을 일으켰다. 미국 상영에서는 무려 950만 달러의 수익을 내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최고의 흥행 수익을 올린 영화이다. 2004년에는 동명의 미국판 리메이크 영화로 만들어져 리차드 기어, 제니퍼 로페즈가 출연해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오리지널 영화 ‘쉘위댄스’는 수오 마사유키 감독 작품이다. 주연에 스기야마 역으로 야쿠쇼 고지, 마이 선생 역으로 쿠사카리 타미요가 출연했다. 스기야먀는 중소기업 중간 관리자로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사람이다. 우리나라 국민배우 안성기처럼 성실하고 편안한 인상을 주는 배우다.

무기력증에 빠진 중년 아저씨가 사교댄스라는 생소한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되는 영화 '쉘위댄스'. [사진 쉘위댄스 스틸]

무기력증에 빠진 중년 아저씨가 사교댄스라는 생소한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되는 영화 '쉘위댄스'. [사진 쉘위댄스 스틸]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이 사람의 평범한 일상생활에 권태기가 찾아왔다. 어느 날 퇴근길에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마이 선생에게 시선이 꽂힌다. 자기도 모르게 발길을 따라 가보니 댄스학원이었다. 평소 댄스라고는 전혀 관심도 없었던 중년 아저씨가 아름다운 마이 선생에게 반해 댄스 학원에 마치 마술에 걸린 듯 그 자리에서 등록한다. 며칠 지나자 식사라도 같이하자고 제의했더니 마이 선생은 스가야마의 흑심을 알아채고 냉정하게 뿌리친다. 스가야마도 무안해져 댄스를 그만둘까 했으나 이미 댄스의 매력에 빠져버려 댄스에만 몰두하기로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댄스 실력도 어느 정도 올라가 경기대회에 나가보라는 권고를 받는다.

이때쯤 매일 퇴근하면 제시간에 귀가하던 남편이 늦어지는 횟수가 늘어나자 아내는 남편을 의심한다. 사설탐정을 사서 알아보니 남편이 댄스를 배우고 있고 경기 대회에도 나갈 예정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이윽고 경기 대회 당일 아내와 딸이 몰래 경기장에 가서 소리쳐 스기야마를 응원한다. 스기야마는 놀라 스텝을 망치고 대회 도중 뛰쳐나가 댄스를 그만둔다. 그간 가족 몰래 댄스를 배운 것을 아내에게 사과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내와 딸은 스기야마가 다시 댄스를 할 것을 권장한다. 마이 선생이 영국으로 떠나기 전날 댄스파티가 열리는데 밖을 보니 ‘쉘위댄스 스기야먀’라는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것을 보고 들어간다. 그리고 마이 선생과 마지막 춤을 춘다. 이때 ‘쉘위댄스’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장면이 가장 멋지고 뭉클하다.

리메이크한 미국 영화는 리차드 기어가 변호사로 나온다. 매혹적인 댄스 선생 역으로는 댄스 영화 단골 제니퍼 로페즈가 나온다. 미국에서는 변호사 일도 어느 정도 하고 나면 권태로운 모양이다. 일본 영화나 미국 영화나 둘 다 댄스 배우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는 것은 공통이다. 두 나라가 우리나라처럼 댄스를 불법으로 간주해 단속하던 역사도 없는데도 그렇다. 그만큼 댄스를 배우려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넘어서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이 두 영화의 특징은 댄스스포츠는 어느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춤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평범함 사람이 배우면 좋은 것으로 소개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이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댄스스포츠가 붐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영화 '쉘위댄스'의 여주인공 쿠사카리 타미요. [사진 쉘위댄스 스틸]

영화 '쉘위댄스'의 여주인공 쿠사카리 타미요. [사진 쉘위댄스 스틸]

나는 운 좋게도 쉘위댄스의 여주인공 쿠사카리 타미요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댄스스포츠코리아’ 잡지사 기자 신분이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예술의 전당에서 발레 ‘카르멘’ 공연을 위해 그가 입국했다. 봄에 신문을 보고 관계 기관에 인터뷰 신청을 해 가을에야 만났다. 사람의 모습에서 광채가 난다는 것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 스기아먀가 처음 그녀를 보고 반했듯이 나도 그녀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녀가 발레로 다져진 그림 같은 체형에 곧은 자세로 얼굴 표정까지 풀지 않아 더 그랬던 것 같다.

준비해 간 질문지에는 언제부터 댄스스포츠를 배웠으며 어느 종목을 가장 좋아하느냐 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댄스스포츠는 배운 적도 없고 댄스스포츠에 나오는 자세와 동작은 발레에 다 나오는 것이라 어렵지 않게 연기했다고 했다. 발레가 댄스스포츠의 원조 격이라 맞는 말이었다. 댄스스포츠는 전혀 따로 배운 적도 없고 모른다는데 그다음에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땀만 뻘뻘 흘리다 배정받은 30분을 다 보냈다. 그래도 사인도 해주고 기념 촬영에도 응해줬다. 이 영화의 성공 덕분에 그녀가 감독인 수오 마사유키와 결혼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쉘위댄스’가 모티브가 된 것인지 몰라도 2004년에 박정우 감독이 이성재, 박솔미 주연으로 ‘바람의 전설’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잔뜩 기대를 갖고 봤는데 영화의 내용이 실망스러웠다. 카바레를 배경으로 제비가 나오고 주변 인물도 사회적으로 손가락질당하던 부류가 나왔다. 실제로는 카바레에서는 추지도 않는 댄스스포츠가 영화에 등장한 것이다. 나중에 이 영화의 안무지도를 했던 댄스 강사와 만나 이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대본을 보고 이런 줄거리라면 협조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결국 만들어지고, 누군가가 안무지도를 맡게 될 것이라며 이왕이면 그 선생이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해 수락했다고 했다. 어차피 만들어질 댄스 영화라면 댄스라도 제대로 소개하자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댄스스포츠의 여러 종목을 보여주며 춤의 세계를 전파해주고 있다. 출연 배우들이 처음에는 댄스 실력이 늘지 않아 난관에 봉착했다지만, 그런대로 볼만 했다. 이 영화의 결말도 제비 남자의 수사를 맡았던 여자 경찰(박솔미 분)이 댄스 학원을 차려 원장으로 춤을 가르치는 것으로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댄스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퇴폐적인 것만은 아니며 이제는 양지에서 제대로 배워 인생을 즐기라는 메시지였다.

불법 입국한 조선족 여인이 댄스 선수와 위장 결혼해 댄스를 배우는 줄거리의 영화 '댄서의 순정'. [사진 댄서의 순정 스틸]

불법 입국한 조선족 여인이 댄스 선수와 위장 결혼해 댄스를 배우는 줄거리의 영화 '댄서의 순정'. [사진 댄서의 순정 스틸]

댄스 영화 붐을 타고 2005년 ‘댄서의 순정’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박영훈 감독 작품으로 문근영, 박건형, 박원상 등이 출연했다. 역시 댄스스포츠의 종목을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그러나 줄거리가 불법 입국한 조선족 여인이 댄스 선수와 위장 결혼해 댄스를 배운다는 설정이어서 어두웠다. 박건형이 경쟁 선수의 사주로 다리를 다쳐 선수 활동을 할 수 없게 되고 부득이하게 경쟁 선수와 경기 대회에 나간다는 설정이었다. 출연자들의 춤 실력은 그런대로 볼만 했다. 이 영화도 결말은 두 사람의 결혼으로 해피엔딩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국산 두 영화가 댄스스포츠를 소개하고 이해나 보급에 일조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영화 쉘위댄스처럼 밝은 분위기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제시를 하지 못해 아쉽게 생각한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평범한 사람이 밝은 분위기로 댄스스포츠의 세계에 입문해 춤을 즐기는 영화를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해 본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흥행에 성공하려면 알려진 배우를 섭외해야 하고 댄스를 배워야 한다. 댄스 실력도 웬만큼 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그게 문제일 것이다.

댄스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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