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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혀지는 동구 교두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헝가리와의 수교로 물꼬가 터진 한국의 동구권 진출은 1일 폴란드와도 국교를 틈으로써 가속을 얻게 되었다.
연말로 예상되는 유고슬라비아와 관계 정상화가 실현되면 6공화국의 주 외교 이니셔티브인 북방 정책은 예상보다 빨리 동유럽에 전초 기지를 확대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외교적 성과가 상징적 의미를 넘어 쌍방에 다같이 혜택을 줄 수 있는 경제·정치적 교류로 확산해서 구체적 결실이 나타날 수 있도록 정부에 치밀한 계획과 준비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우선 당부하고 싶다.
미국 및 서구 등 우리의 전통적 시장이 보호주의 및 개방 압력으로 더 이상의 팽창이 어려워진 터에 동구 진출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제3의 교역 돌파구로서의 잠재력을 안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성급한 접근보다는 주도 면밀한 사전 정지 작업을 통해 실익을 취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됨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한국의 동구 진출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우리가 이미 거듭 지적했듯이 평양으로 가는 우회로로서의 역할로 활용하는데 있다. 한국의 공산권 진출을 막아온 이념의 벽이 허물어지고 이들과 평화적 공존 관계를 다지게 되면 북한은 더 이상 고립주의를 고집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공산 세계가 변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동구 진출은 최근 평양을 다녀온 개스턴 시거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비공식 외교 활동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급속한 한국의 동구 진출이 북한의 고립감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은 남북 관계의 개선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이 공산권과 접근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북한이 개방 속도를 앞당기고 한국의 우방과 관계를 개선하게 된다면 우리의 오랜 대북 정책 중 하나였던 남북한에 대한 주변국들의 교차 접촉과 교차 승인의 길이 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외부 정세의 변화는 남북 평화 공존의 기본 틀인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원칙이 움직일 수 있는 행동 반경도 넓어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동유럽 국가들에 폭넓게 번지고 있는 탈 이념적 개혁의 움직임이 우리의 분단 문제에서도 이념 대립의 앙금을 제거해 주게 될 것을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그와 같은 변화가 40여년 동안 굳어져온 북의 일관된 교조주의를 단시일 안에 되돌릴 것으로 낙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남북간의 이념 대립 관계가 동구의 변화에서 오는 여파로 희석되게 되면 남북 관계는 이념적 대결로부터 벗어나 실용주의적 타협의 가능성이 넓어지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 수교는 또 지금까지 서방 세계의 변방에 밀려 있던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동서 양 진영의 중심권에 등장했다는 의미도 무시할 수 없다. 그와 같은 변화는 비단 외교-경제 활동의 서방일변도에서 벗어날 기회뿐 아니라 우리 국민의 의식과 시계를 무한히 터주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폴란드와의 수교가 그 자체로서 갖는 중요한 의미와 아울러 북한에 대한 공존의 메시지를 보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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