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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홍수로 150만 수재민 발생”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집중호우로 인한 북한의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남한 민간단체들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한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북한이 수해를 이유로 아리랑 공연과 8.15축전을 취소한데다 대북 지원단체들 사이에서 식량생산 기반 붕괴’, 준(準) 국가 위기상태’등 심각성을 더하는 관측까지 나오자 북한 이재민 구호에 대한 긴박감까지 감돌고 있다. 민간 지원단체들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냉랭해진 대북 지원에 대한 여론을 의식하면서도 북한 주민들에 대한 절박한 구호 지원과 단절된 남북대화 복원의 동력 제공 등을 목표로 북한 현지 방문이나 모금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함경남도 요덕군 주민들이 끊긴 도로를 복구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조선중앙TV촬영]

◆北 인명피해 1만명‥‘준 국가위기 상태’= 북한 수해 피해규모에 대해 민간단체들이 파악한 규모가 갈수록 커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대북 지원사업을 해오고 있는 남한의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중국 단둥으로 나온 북한 사업가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전역에서 홍수로 3000명 정도가 사망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북측 사업가는 “특히 평안남도 지역에서 집중 폭우로 아파트 전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주민들이 깔려 대규모 인명피해가 났다”고 말했다.

대북 인권단체인 좋은 벗들은 2일 소식지를 통해 “북한이 이번 홍수로 인해 130만∼150만명의 수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면서“현재 등록된 실종자 수만도 4천명에 달해 최종 집계되는 실종자와 사망자는 1만여명 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소식지는“황해남도 해주시에서만 200여명의 시체를 건져냈으며 함경남도 요덕군에서는 구읍리에 있는 마을이 계곡물에 떠내려가 학교와 아파트 2동만 남고 나머지는 전부 자갈밭으로 변해 버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실종된 사람들은 어디로 떠내려 갔는지 아직 파악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강원도 금강군 제방 복구장에서는 진펄(진구렁)이 많아 물에 떠다니는 시체를 보면서도 위험해서 건져내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심각한 식량난 속에서 함흥 이남의 전체 피해 지역은 지역별로 다소 차이가 있으나 논밭이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 간 것이 십만여 정보에 이르는데다 도로와 철길이 끊겨 피해지역에 비상 구호식량을 나르기도 어려운 지경”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미사일 발사 후 취해진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대응한 북한 당국이 준전시 상황을 발동하는 바람에 전쟁 예비물자를 활용해 수해지역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해주와 개성 지역에 모기로 인한 말라리아가 주민들에게 확산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등 물난리 이후 전염병에 대한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좋은 벗들은“북한의 현 상황은‘고난의 행군’말기인 1990년대 중ㆍ후반보다도 더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피해규모가 너무 커서 북한이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어려운 거의 국가위기상태로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 단둥의 한 조선족 상인은 “최근들어 북한쪽에서 식량, 옷가지, 가마솥, 기름 등 수해복구를 위한 물품에 대한 주문이 부쩍 늘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민간단체 北수해 지원 ‘잰걸음’= 수해로 북한 주민들이 ‘고난의 행군’을 넘어 ‘생사의 기로’에 설 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남한 민간단체들이 북한 수재민 지원에 나섰다.

200여개 사회단체와 정당으로 구성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이날 긴급 의장단회의를 열어 오는 15일까지 남한과 북한의 수재민을 동시에 돕기 위한‘남북수재민돕기운동’을 전개, 북한에도 수해복구 장비와 물자를 지원키로 했다.

11개 단체로 구성된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도 오는 9일 오전 북한 수해복구 지원문제를 둘러싼 토론회를 갖고 지원단체들이 통일된 의견을 모아 대북 지원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또한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 통일연대, 민화협 등이 연대한 통일운동기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오는 15일 남북이 동시에 수해를 입은 가운데 정부가 남측보다 피해가 심각한 북측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대책을 촉구하는‘국민에게 드리는 호소’을 발표할 예정이다.

아울러 대북지원단체인 나눔인터내셔날과 한민족복지재단은 이날부터 각각 평양과 평안남도지역을 방문, 주민들의 식량사정과 폭우로 인한 피해 실태를 직접 살펴본 뒤 필요한 지원을 할 계획이다.

국제구호단체인 한국JTS도 3∼9일 사이 세차례에 걸쳐 생활필수품, 라면과 밀가루, 의약품 등 평남 양덕군, 신양군, 성천군 등 피해가 심한 지역 이재민의 긴급 구호에 나서기로 했다.

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아직까지 북한의 수재 사정이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미사일 충격이 가시지 않아 북한을 지원하는 문제가 빨리 가동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면서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말라리아가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ㆍ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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