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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조국의 시간’은 ‘조국의 절규’다

중앙일보

입력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일 출간한 책 『조국의 시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일 출간한 책 『조국의 시간』

'조국의 시간' 읽어보니..내용 새로운 것 없지만 문장은 선동적 #조국, 여론재판 노린듯..결과적으로 여론 더 양극화될까 우려

1.‘조국의 시간’이 1일 시장에 나왔습니다. 시판 전부터 워낙 화제가 됐던 책이라..서둘러 구해 봤습니다. 대개 예상했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내용과 문장스타일..두 가지 측면에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2.내용면에서..한마디로 새로운 사실은 거의 없었습니다. 조국이 주장해오던 평소 주장과 생각을 반복했습니다. 지난 4년간 각종 언론보도나 SNS 글 가운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인용하는 바람에 분량은 늘어났지만, 읽는데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조국이 가장 중점을 둔 내용은 ‘2장. 나를 둘러싼 의혹’입니다. 조국이 출간 취지에 대해 스스로 ‘최소한의 자기방어’라고 밝혔듯..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내용들입니다.

3. 당연히 내용은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것들입니다. 진실을 털어놓는 참회록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자신에 불리한 내용은 언급 않거나 간단히 지나갑니다.
예컨대 논란이 많았던 사모펀드 관련 부분..조국은 책에서 ‘(2020년 12월) 서울중앙지법은 (부인) 정경심 교수에게..사모펀드 관련 횡령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적었습니다. 이 문장만 보면 사모펀드 의혹이 모두 근거없는듯 느껴집니다.

4. 전후맥락은 다릅니다. 법원이 사모펀드 관련 ‘업무상 횡령’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법원은 사모펀드 관련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핵심에 해당되는 미공개정보이용 차명주식취득에 따른 자본시장법ㆍ금융실명제법 위반, 증거인멸교사 등이 다 유죄입니다.

5.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딸 입시비리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갑니다.
‘(서울지법 정경심 재판에서) 변호인이 제출한 거의 모든 해명을 배척하고, 정교수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4년 중형을 선고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래서 조국은‘재판결과에 경악했다’‘그래서 항소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역시 이 문장만 보면 조국이 많이 억울해 보입니다. 그런데 법원이‘허위’로 판정한 딸의 스펙은 7가지였으며, 정경심은 허위 스펙만으로 4년형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17가지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판사는 ‘죄질이 나쁘다’고 특별히 판시했습니다.

6. 문장스타일을 보면..이 글을 쓴 의도가 도드라집니다.
첫문장이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써내려가는 심정입니다.’보기 힘든 격한 표현입니다. 조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가슴이 아프겠지만, 조국을 싫어하는 사람에겐 섬뜩하게 느껴질 겁니다. 조국을 두고 이미 갈라진 여론을..다시 한번 더 깊이 베어버리는 표현입니다.

7. 격한 표현은 이어집니다.
‘저와 가족은 무간지옥에 떨어졌습니다. 검찰 언론 야당은 합작해 멸문지화를 위한 조리돌림과 멍석말이를 시작했습니다..’
무간지옥은 지옥 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곳이며, 멸문지화는 가문 전체를 파멸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시종일관 격한 표현의 연속입니다.
조국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책을 읽다보면..이유는 정반대지만.. 모두 흥분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8. 독자를 흥분시키는 선동적 스타일은 조국이 고민한 결과로 짐작됩니다.
‘재판결과에 경악’한 조국 입장에선 법정 밖 여론에 호소하고 싶을 겁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촛불시민에 대한 감사가 절절합니다. 여론재판의 승리를 기대하나 봅니다.
어쩌면 조국이 책에 대해 ‘주장 이전에 기록’이라고 말한 것처럼..길게 봐 ‘역사의 법정’에서 이기겠다는 의지도 보입니다.

9. 당연히 책에 대한 반응도 극과 극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친노원로 유인태의 반응이 따뜻하면서 쿨합니다.
 첫째. 개인적으로 동정할만한 대목이 있다. (한 일에 비해 집안이 너무 가혹하게 당했다..책이라도 써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식구들 정신질환 걸릴거 같다.)
둘째. 내로남불의 죄를 저지른 건 사실이다.(그동안 아주 고고하고 거룩한 사람처럼 해왔던 것에 비해 드러난 게 여러가지로 좀 부끄러운 일을 많이 했지 않느냐..)
셋째. 그러니까 그냥 참고 지나가는 것이 좋다. (장관직만 좀 사양했더라도 저렇게까진 안갔을덴테..그냥 업보라 생각하는게 더 위안이 되지않을까..)

10. 유인태의 결론은‘그래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미칠 영향’에 대해 ‘별 큰 영향 없을 것’입니다.
동의합니다. 어차피 책을 읽는다고 마음을 바꿀 사람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갈라진 여론을 더 갈라놓을 것이란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칼럼니스트〉
2021.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