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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황당한 평양 동영상, 더 황당한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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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P4G 회의 개막영상 능라도 캡쳐. 능라도는 평양 대동강 한가운데 섬이다. 이번 행사에선 서울 대신 평양 동영상이 등장해 물의를 빚었다.

P4G 회의 개막영상 능라도 캡쳐. 능라도는 평양 대동강 한가운데 섬이다. 이번 행사에선 서울 대신 평양 동영상이 등장해 물의를 빚었다.

문재인 주최 국제회의..서울 대신 평양 들어간 동영상 상영 #'외주업체 실수'라는 청와대 해명으로 끝낼 사안 아니다

1. 눈을 의심할 정도로 황당한 동영상이었습니다. 청와대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국제행사장에서 상영된 대한민국 서울 홍보영상에 느닷없이 평양이 등장했으니까요. 평양 대동강 한가운데 길죽한 섬(능라도)에 촛점을 맞춘 영상이 상공으로 줌아웃하는 과정에서 평양 전경과 대동강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2.불과 몇 초에 불과해 쉽게 알아보긴 힘듭니다. 능라도란 얘기를 듣고보니 분명했습니다.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라는 거창한 국제회의에서 대한민국의 중심이 마치 평양인듯 엉뚱한 동영상을 올린 겁니다. 이런 황당한 동영상이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버젓이 상영되고, 행사후 갈무리되어 다음날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청와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3.보도 이후 청와대에서 내놓은 해명은 더 황당합니다.
‘청와대는 영상 제작에 관여하지 않았다. 외교부 정상회의 준비기획단이 외주업체에 의뢰해 제작했다’랍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정상회의에서 일어난 국가적 망신인데..외주업체 잘못이라니..청와대에서 내놓기엔 너무 무책임한 반응입니다.

4.이런 동영상을 만들기까지는 많은 감수과정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발주처는 먼저 동영상 제작 외주업체들에 아이디어를 공모합니다. 외주업체들이 동영상 시안을 만들어 발주처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설명회를 합니다. 발주처는 비교평가한 다음 최적안을 결정해 발주합니다. 외주업체는 그 과정에서 발주처가 주문한 요구사항을 반영한 2차 시안을 가지고 다시 발주처에 설명하고 협의합니다.

5.이런 과정이 수차례 반복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영상을 사용할지 하나씩 맞춰나갑니다.
그러니까..행사의 책임자는 당연히 어떤 영상이 들어가는지 알아야 맞습니다. 외주업체는 발주처 요구에 맞춰 계속 수정하면서 제작합니다. 발주처가 감수 주체이기에 책임도 발주처 몫입니다. 설혹 최고책임자는 모른다 하더라도 적어도 실무책임자는 당연히 알아야 맞습니다.

6.이런 업무를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압니다. 청와대의 해명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됩니다.
그러니 음모론이 나오는 겁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대다수 국민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방식으로, 암호같은 메시지를 일부러 넣었다..는 추론입니다. 평양을 돋보이게하는 내용이라 더 민감합니다. 진짜 의도적이었는지는..책임을 찾다보면 나올 겁니다.

7.그런데 청와대는 책임추궁 의지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외주 잘못이니..그리 알아라’는 태도로 느껴집니다.
행사 이틀전‘(P4G 정상회의는)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주관한 국제회의 중 가장 많은 국가가 참여한다..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미래기술이 다 접목돼 있는 회의로 만들겠다’고 밝힌 사람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입니다. 탁현민이 진상규명에 나서야할 적임자로 보입니다.

8.문재인 청와대는 일부 우파로부터 주사파란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그런 정치적 맥락에서 보자면 가벼운 사건이 아닙니다. 이런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더욱이 그 책임론의 꼬리를 잘라버리는듯한 태도를 보임으로써..더 많은 의심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진상을 규명해야 합니다. 불과 하루전 사건이라 그리 어렵진 않을 겁니다.

〈칼럼니스트〉
2021.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