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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촉법소년" 비웃으며 욕설…온라인강의 新범죄 '줌바밍'

중앙일보

입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하면서 신종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줌'과 폭탄을 떨어뜨린다는 뜻의 ’바밍‘을 합친 ’줌바밍(Zoom-Bombing)'이다. 줌바밍 범죄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 3월 22일 윤지선 교수의 온라인 강의에 침입한 A군이 학생들과 윤 교수가 볼 수 있게 쓴 글. [커뮤니티 캡처]

지난 3월 22일 윤지선 교수의 온라인 강의에 침입한 A군이 학생들과 윤 교수가 볼 수 있게 쓴 글. [커뮤니티 캡처]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1일 세종대 윤지선 교수의 온라인 강의에 무단 침입해 수업을 방해한 2명을 검거해 송치했다. 피의자 중 한 명인 A군은 만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촉법소년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군에게 업무방해·모욕·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성폭력처벌법 등 혐의를 적용해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했다.

10대 침입자들의 테러…줌바밍

A군과 함께 경찰에 검거된 성인 B씨는 정보통신망법상 정보통신망침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B씨는 외부 링크를 통해 접속한 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염탐만 했기 때문이다. B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하 의도가 있는 닉네임을 설정한 뒤, A군이 음란물을 올리고 모욕적 발언을 하는 것을 지켜봤다.

지난 3월엔 400명이 듣고 있던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온라인 입시설명회에 여러 명이 무단 침입해 욕설과 음란물을 올리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4월엔 광주의 한 고등학교 온라인 수업에 침입한 외부인이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남성으로, SNS에 올라온 온라인 수업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보고 접속했다고 한다.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연합뉴스

비슷한 유형의 범죄가 반복되는 건 ‘줌바밍’에 대한 죄의식이 적은 데다 비공개라고 해도 쉽게 접근 가능해서다. 실제 윤 교수의 수업에 침입한 외부인과 광주 고등학교 침입자는 모두 10대로 밝혀졌다. 젊은 층에서 주로 이뤄지는 사이버범죄의 특성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분명한 범죄"라는데 놀이로 소비

외부인의 침입 경로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 공유된 온라인 강의 링크다. 디씨인사이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엔 ‘줌 테러 해달라’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 온라인 수업 등에 접속할 수 있는 링크와 비밀번호를 올리면 이를 본 사람들이 들어가서 진행을 방해하는 식이다.

경찰 관계자는 “줌바밍은 기본적으로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해당한다. 이뿐 아니라 대화 내용이나 유포한 사진 등에 따라 모욕, 명예훼손 등 각종 죄명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며 “대면 범죄가 아니다 보니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분명한 범죄라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 올라온 게시글. 공유한 줌 링크로 들어가서 테러를 해달라는 내용이다. [커뮤니티 캡처]

지난달 1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 올라온 게시글. 공유한 줌 링크로 들어가서 테러를 해달라는 내용이다. [커뮤니티 캡처]

국내 학회·미국서도 줌바밍 논의

한국젠더법학회는 지난 15일 토론회 열고 줌바밍 범죄에 대한 형사법적 쟁점을 논의했다. 토론회 발표를 맡았던 서혜진 변호사(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는 “혐오와 공격적인 표현이 주로 나타나는 줌바밍이 놀이처럼 소비되고 있다”며 “행위에 대해 개별적인 법적 처벌이 가능하겠지만, 새롭게 나타난 범죄인만큼 이를 따로 처벌하는 입법 필요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줌바밍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FBI가 줌바밍이 범죄임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미국 매사추세츠의 한 고등학교 화상수업에 침입한 사람은 욕설과 함께 교사의 집 주소를 공개했다. 플로리다에선 온라인 수업에 무단으로 들어온 남성이 나체를 노출하는 사건이 벌어져 논란이 됐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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