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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식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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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가로 40㎝, 세로 30㎝, 높이 3㎝, 무게 400g.

스테인리스 식판은 코로나 시대에 주목받는 상품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다양한 형태의 스테인리스 식판이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재택근무가 일상으로 자리 잡으며 식판은 설거지 걱정을 덜어주는 효자 상품으로 떠올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블로그엔 식판을 샀다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식판은 마을 경로당에도 침투(?)하고 있다. 한 상 가득 차려 나눠 먹었던 경로당 밥상 문화는 각자가 식판에 덜어 먹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식판은 공정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제아무리 뛰어나도 식판에 담을 수 있는 밥과 국, 반찬은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설 수 없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식판은 3가지 반찬을 담을 수 있는 3찬 식판이다. 최근에는 담을 수 있는 반찬의 가짓수를 늘린 4찬 식판과 5찬 식판까지도 팔린다.

특히 군(軍)과 식판은 떼려야 뗄 수 없다. 하루 세끼를 식판과 함께한다. 군 식판은 반찬 가짓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1970년대 중순까지만 해도 한국군에 식판은 없었다. 손바닥을 펼친 것과 비슷한 크기의 1식 1찬 식통이 전부였다. 이후 1식 2찬, 1식 3찬 플라스틱 식판을 거쳐 현재의 1식 3찬 스테인리스 식판에 정착했다.

군 식판의 기원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진 건 없다. 군대 식판이 불교 선방 발우(鉢盂)에서 유래했다는 연구 정도가 전부다. 미국 앤티오크대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교수는 『불교 파시즘』에서 “알루미늄 식판은 선사의 선방 공양 그릇에서 유래됐다”며 “군인들이 금속 재질의 식판을 통해 종교적 금욕주의와 결합한 군대의 차가운 효율성을 느끼게 했다”고 주장했다.

부실 급식 문제가 군부대 담장을 넘었다. 건더기 없는 오징어국부터 토마토로 배를 채웠다는 제보가 이어진다. 이에 국방부는 하반기부터 900여 명의 민간조리원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부실 급식은 비단 군부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이집과 초·중·고 부실 급식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단골 뉴스다. 부실 급식은 진보와 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는다. 해결하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가 여전치 방치되고 있음을 뜻한다. 한국은 식판과의 전쟁에서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