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빨리 일을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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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엄청난 할 일을 두고도 국회운영이 너무나 지지부진한데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벌써 황금 같은 정기국회의 1백일 회기가 절반이 지나갔는데도 중요의안 중 처리된 것은 아직 한 건도 없고 처리전망마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여야가 5공 청산을 둘러싼 표면상의 대립과는 달리 활발한 막후접촉을 통해 곧 공식 협상 테이블을 마련할 눈치이긴 하지만 불안정한 4당 관계로 보아 언제 다시 무슨 불화를 겪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국회운영을 보는 심정은 항상 조마조마하지 않을 수 없다.
5공 청산을 예산안심의와 연계시킨 야권전술로 인해 예결위 구성이 벌써 4, 5일이나 늦어졌고 이에 따라 상위도 뚜렷한 이유 없이 며칠씩 유야무야로 넘어갔는데 이런 속도로 나가다가는 산적한 의안들을 언제 다 처리할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현재 쌓여있는 중요현안들만 보더라도 이번 국회가 회기 말까지 열심히 한다해도 다 처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고 자칫 시간에 쫓기다 보면 졸속처리가 되기 십상이다. 5공 청산문제를 비롯해 보안법·안기부법 등의 개폐문제가 있고, 내년 상반기의 지방의회구성을 목표로 하는 지방자치관계법·토지공개념의 입법문제·광주보상법·추곡수매가·교육관계법·노동관계법…등 일일이 꼽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의안들이 산적해 있다.
이중에는 여야가 작년 말까지 처리를 다짐했다가 올해로 넘긴 것도 수두룩하다. 광주피해자 보상과 농가부채 경감을 위해서는 이미 작년에 예산조치까지 끝냈지만 여야 이견으로 아직도 실현을 보지 못하고있다. 이처럼 정쟁으로 민생을 희생시키는 일이 올해 또 되풀이되지나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무조건 국회를 활성화하고 국회의 기능을 총 가동하라고 여야 4당에 제의하고자 한다. 여야는 현재 5공 청산 등에 관한 협상을 앞세워 국회운영에는 소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국회운영과 협상을 병행하되 지금까지처럼 한가롭게 마냥 시간만 보내지 말고 좀더 속도감과 열성이 느껴지도록 집중적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자면 우선 예산안 심의와 5공 청산의 연계를 풀어 즉각 예결위활동에 들어가야 한다고 보며 이와 병행해 4당 중진회담을 즉시 재가동해 여기서 5공 청산을 위시한 각종 쟁점들을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모든 상위도 전면 가동해 소판 의안을 빨리 빨리 심의해 나가야 한다.
이처럼 협상과 국회심의를 범행해 가면서 합의되는 사항은 그때그때 즉시 매듭을 지어 상위수준에서라도 의결하는 가시적 결과를 국민에게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합의가 된 사항도 다른 정치적 이견으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없겠기 때문이다.
요컨대 국회가 일을 해야 하며, 국회가 해야할 각종 제도 개혁에 관한 입법은 다른 어떤 사안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이 4당에 있어야 한다. 5공 청산을 한다는 명분 하나에 매달려 아무 일도 못하는 일이 되풀이 돼서는 결코 안 된다.
정치문제와 입법·정책문제가 쉽게 구별될 성질은 아니지만 정치 때문에 민생과 제도개혁이 늦어져서는 안 된다. 정치문제는 중진회담에서 집중 절충하고, 이어 영수회담도 빨리 여는 것이 좋겠다. 노 대통령의 유럽방문 후까지 미룰 필요가 없다.
더 이상 늦출 시간도 없음을 알고 4당은 빨리 국회를 활성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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