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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비명···납품 줄고 원자재값 뛰고 인력난, 車부품사 3중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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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이 생산한 자동차용 냉연강판. 연합뉴스

현대제철이 생산한 자동차용 냉연강판. 연합뉴스

자동차업계가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빚으면서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는 그에 따른 부품 납품량 감소와 원자재가 급등, 제조업 기피 심화로 인한 인력난까지 삼중고를 맞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난에 처한 상황에서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대전환 중인 자동차산업의 흐름도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라 부품업계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원자재가 상승에도 납품가엔 반영 못 해  

자동차 부품업계는 우선 최근 원자재가 급등으로 경영난이 더 심화하고 있다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 도금업을 하는 현대차의 2차 협력사(1차 협력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기업)의 박모 대표는 25일 "구리 가격이 작년 말보다 50% 이상 뛰었다. 원가 부담은 가중되고 있지만, 고객사(1차 협력사)에 제품 단가를 올려달란 말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에서 2·3차 협력사는 하청구조에서 가장 밑바닥인 '을' 또는 '병'으로 불린다.

실제로 올해 들어 자동차용 냉연강판·구리 등 원자재 가격은 급격히 뛰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이달 냉연강판 가격(유통 기준)은 t당 1117달러(125만원)로 지난해 5월(713달러)보다 57% 올랐다. 또 이달 런던금속거래소 기준 구리 가격도 t당 1만226달러(약 1150만원)로 지난해 5월(5223달러)보다 2배 상승했다.

하지만 납품가 인상은커녕 인하 압력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다. 자동차 2·3차 협력사 대표들은 "갈수록 중소기업 하기가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부품 도장업을 하는 김모 대표는 "원자재 가격 상승 압박이 있는 데다, 고객사(1차 협력사와 완성차업체)에선 오히려 제품 가격을 조정하려(인하하려) 해 이쪽저쪽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며 "완성차나 1차 협력사는 고액 연봉 등 높은 고정비를 만회하기 위해 하청업체의 납품가를 낮추려는 관행이 아직 남아있다"고 말했다.

최근 2년 글로벌 구리 가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최근 2년 글로벌 구리 가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인력난은 車산업 생태계 붕괴 위협  

원자재 가격 상승 외에도 부품업계의 경영 환경은 악화일로다. 박 대표는 "올해 초까진 현대차·기아에 공급하는 물량이 늘어나 매출은 괜찮은 편이었는데, 2분기 들어 차량용 반도체 부족 영향으로 현대차·기아의 발주 물량이 줄었다"고 했다. 그는 또 "생산직 인력 구하기가 갈수록 어렵다. 특히 고졸 인력이 부족하다"며 "제조업 생산직에 오지 않으려는 기피 현상이 전보다 더 심해졌다"고 우려했다. 일부 부품사는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어렵게 확보한 전문 인력을 내보내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품업계의 인력난이 원자재가 상승보다 자동차 산업 생태계에는 더 위협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문호 워크인 조직혁신연구소장은 "생산직 현장의 인력난은 고질적이지만, 전기차 시대 전환기를 맞아 이 문제가 더 깊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처럼 정부가 더 강하게 개입하는 수밖에 없다. 지자체·대기업과 함께 학생들을 현장에 맞는 전문 인력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중국이 자동차 생태계를 자국 내에 구축하려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도 전문 인력을 갖춘 부품 기업을 내재화·지역화하지 않으면 자동차 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2년 글로벌 구리 가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최근 2년 글로벌 구리 가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전기차 시대 대비 사업 전환도 과제  

또 부품업체들은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업종 전환을 서둘러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이 가속화할수록 엔진·변속기가 사라지는 등 부품의 종류와 개수가 확 줄어든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아이오닉5 전기차에 들어가는 부품 덩어리(UPG, Uniform Part Group)는 360개로 내연기관 차(약 500개)의 72% 수준에 불과하다.

부품업계는 당장 전기차에 맞는 부품 개발과 인력 충원을 해야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자동차산업 전체에 박사 연구인력은 1000여 명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대부분 대기업에 몰려 있다"며 "전동화 시대에 맞는 인력 충원이 시급하지만,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중소기업으로선 고임금 인력을 데려오거나 연구개발을 할 시설에 투자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부분의 자동차 부품사는 영업이익률이 감소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최근 110곳 자동차 부품사를 대상으로 지난해 매출·영업익을 조사한 결과, 300인 이상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3%로 2019년(4.1%)보다 1.1%포인트 낮아졌다. 또 중소기업(300인 미만)의 영업이익률은 1.3%로 2019년(2%)보다 0.7%포인트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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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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