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차 수퍼사이클…원자재값 불붙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1면

글로벌 경기회복으로 석유·구리·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글로벌 경기회복으로 석유·구리·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석유·구리·철광석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은 10여 년 만에 원자재 ‘수퍼 사이클’(장기 상승세)에 들어섰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원자재지수 6년6개월 만에 최고 #‘경기지표’ 구리 가격 사상 최고 #철광석 급등에 건설·차·가전 비상 #원유·농산물 값도 꾸준히 올라 #투자은행 “역대 다섯번째 상승기”

10일 산업통상자원부·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 동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골드만삭스 원자재지수(S&P GSCI)는 지난 9일 526.28을 기록했다. 2014년 11월 이후 6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직전인 지난해 1월 수준(443.35)을 뛰어넘었다.

국제유가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제유가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제 유가는 지난주 배럴당 66.21달러(두바이유 기준)에 거래됐다. 올해 초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제시했던 고유가 시나리오(65.69달러)보다 높은 가격이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하반기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로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글로벌 경기 회복으로 석유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0일 발간한 ‘5월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기름값에 주목했다. KDI는 “농·축·수산물 가격이 높은 상승세를 유지한 가운데 석유류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 폭이 크게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구리 가격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구리 가격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제 구리 가격은 지난 7일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t당 1만361달러로 마감했다. 전날보다 3.35% 상승했다. 장중 한때 t당 1만417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국제 구리 가격은 2011년 2월 기록했던 역대 최고가(1만190달러)를 10년 3개월 만에 갈아치웠다.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구리는 ‘닥터 코퍼’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구리 수요가 늘어 가격이 오르면 경기 호황 징후, 구리 가격이 내리면 경기 하강 징후로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구리 가격을 경기 선행지표로 활용하는 셈이다.

세계식량가격지수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세계식량가격지수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최근 보고서에서 “글로벌 경제 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구리 수요가 늘고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초 코로나19 확산으로 하락했던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며 “투자자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각국의 경기 부양책과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글로벌 경제 회복을 촉진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골드만삭스 원자재지수(S&P GSCI)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골드만삭스 원자재지수(S&P GSCI)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산업 구조의 변화도 구리의 몸값을 올리고 있다. WSJ는 “전 세계가 화석연료를 줄이려고 노력하면서 앞으로 구리 소비량이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고 전했다. 주요국들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을 서두르고 ▶태양광·풍력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활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구리는 빼놓을 수 없는 자원이다.

특히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 분야에서 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기차 배터리의 음극재와 반도체 배선의 원료가 구리다. 미국 헤지펀드 운용사인 리버모어 파트너스의 창업자 데이비드 뉴하우저는 CNBC방송에서 “구리는 새로운 원유”라고 평가했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전기차에 투입하는 구리의 양이 내연기관차보다 네 배 이상 많다”고 설명했다.

WSJ “미국, 값 10% 뛴 품목 급증” … 한국도 5월 물가 3% 넘을 수도 

철광석 가격도 많이 오르면서 건설·자동차·가전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3월 t당 150달러였던 중국 철광석 가격(칭다오항 기준)은 지난주 201.88달러를 기록했다. 중국 철광석 가격이 t당 200달러를 넘은 건 처음이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 t당 70만원이던 철근(SD400, 10㎜) 가격이 지난주 93만원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제때 자재를 구하지 못해 공사 지연도 발생했다. 거푸집 제작에도 차질이 생겼다”고 전했다.

농산물 가격도 급등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지난달 120.9를 기록했다. 지난해 5월(91.0) 이후 상승세를 이어갔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국제 옥수수 가격은 지난해 5월과 비교해 136% 올랐다. 8년 만에 최고가였다. 같은 기간 대두(88.5%)·생돈(84.9%)·원당(62.4%)·커피(아라비카·37.8%) 등도 많이 올랐다. 미국·유럽·브라질 등에서 기상 여건이 나빠지면서 작황이 부진한 영향도 작용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은 원자재 가격이 역대 다섯 번째 장기 상승세에 진입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반면 캐나다 로젠버그리서치의 데이비드 로젠버그 소장은 “(원자재) 수퍼 사이클이란 말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 인상은 국내외 제조업체들에 원가 인상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WSJ는 미국 소비자가 대형마트 등에서 제품을 살 때 1년 전보다 10% 이상 가격이 오른 품목이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원유·곡물 등 원자재 가격과 물류·인건비 등이 전반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5월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전년 동기 대비)를 넘을 수 있다. 여름까지는 높은 물가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은 지난 9일 발표한 ‘2021년 수정 경제전망’ 자료에서 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1.8%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2월 한국은행이 제시한 전망치(1.4%)보다 0.5%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연간 기준으로 물가안정 목표인 2%를 상회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세종=손해용·임성빈 기자, 이승호 기자 sohn.y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