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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석 전석매진 1초 걸렸다…이승환 피켓팅 부른 카페 ‘책가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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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다섯손가락'의 보컬 이두헌 씨가 지난 21일 경기도 용인 수지의 복합문화공간 '책가옥'에서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룹 '다섯손가락'의 보컬 이두헌 씨가 지난 21일 경기도 용인 수지의 복합문화공간 '책가옥'에서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엘레지의 왕자 이 눈물 쏟아질 슬픈 노래 대잔치가 5월 28일 금요일 밤 8시 책가옥에서 열립니다.”

80년대 밴드 '다섯손가락'의 이두헌 운영 #소규모 공연장과 커피 문화 결합한 명소 #공연황제 이승환도 "콘서트 하겠다" 자청 #"나이듦의 재미 깨우쳐" 올 가을엔 신보도

지난 13일 경기도 용인 수지에 위치한 카페 ‘책가옥’의 SNS에 올라온 짧은 공지에 음악팬들이 술렁였다. 함께 붙은 해시태그 ‘#이승환콘서트’ 때문이다. 1만석 규모 공연장도 매진시키는 ‘공연의 신’ 이승환이 50석에 불과한 동네 커피숍에 뜬다는 소식에 역대급 ‘피켓팅’(피 튀는 티켓 경쟁)이 예상됐다. 지난 21일 1인 1매 제한(장당 18만7000원)으로 열린 좌석 예매는 1초 만에 마감됐다. “아내와 PC방에서 도전했는데 실패했다” 등 울분의 후기가 잇따랐다.

아무리 코로나19로 대형 공연이 어렵다지만, 한국 최고 퍼포먼스의 제왕이 왜 하필 이곳일까. “어느 날 승환이가 ‘형, 나 거기서 공연할래’라고 했다. 날짜도, 타이틀도 그가 골랐다. 대형 공연 때 들려주기 힘든 슬픈 노래로 ‘궁상의 끝자락을 보여주겠다’ 하더라.(웃음)”

복합문화공간으로 기획된 카페 책가옥은 외관 높이가 11M 이다. 내부 높이는 7M. 그 사이 공간은 흡음과 방음을 위한 설비 공간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복합문화공간으로 기획된 카페 책가옥은 외관 높이가 11M 이다. 내부 높이는 7M. 그 사이 공간은 흡음과 방음을 위한 설비 공간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85년 3월30일 발매된 다섯손가락 1집. '새벽기차'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등이 수록돼 있다. [중앙포토]

1985년 3월30일 발매된 다섯손가락 1집. '새벽기차'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등이 수록돼 있다. [중앙포토]

예매날 오전 책가옥에서 만난 이두헌(57) 대표의 말이다. 익숙한 그 이름, 1980년대 포크밴드 ‘다섯손가락’의 리더‧기타리스트 이두헌 맞다. 4050 이상에겐 ‘새벽기차’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이층에서 본 거리’ 등을 쓴 뮤지션으로 알려졌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겐 인스타 명소 책가옥의 머리 하얀 커피로스터로 더 친근하다. 1964년생인 그는 “이승환과 한 살 차이인데 그렇게들 안 본다”며 웃었다.

고딕 성당을 연상시키는 뾰족한 삼각 지붕에 빨간 벽돌 외관, 웅장한 삼나무 문이 이채로운 책가옥은 지난해 2월 문을 열었다. 띄엄띄엄 단독주택과 식당, 창고형 건물이 자리한 한적한 동네에 총 높이 11m, 내부 층고 7m의 단층 건물로 지었다. 카페라 하기엔 단을 높인 무대가 널찍하니 애초부터 소극장으로 기획한 모양새다. 미국의 유명 팝듀오 ‘홀 앤 오츠’ 출신 대릴 홀이 운영하는 ‘대릴스 하우스(Daryl’s House)’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뉴욕주 외딴 오두막에다 친분 있는 뮤지션을 불러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려주는 걸 5~6년 전 유튜브로 보고 ‘이거다’ 싶었다. 설 만한 무대가 점점 적어지는데. 작은 공간이라도 스튜디오 공연만큼 수준 있게 할 수 있다면….”

5월28일 이승환의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5월28일 이승환의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는 5월28일 복합문화공간 '책가옥'에서 '엘레지의 왕자'라는 타이틀로 총50석 규모 라이브 공연을 하는 이승환(오른쪽)과 책가옥의 이두헌 대표. 한 살 터울인 두 사람은 수십년째 막역한 관계다. [사진 책가옥]

오는 5월28일 복합문화공간 '책가옥'에서 '엘레지의 왕자'라는 타이틀로 총50석 규모 라이브 공연을 하는 이승환(오른쪽)과 책가옥의 이두헌 대표. 한 살 터울인 두 사람은 수십년째 막역한 관계다. [사진 책가옥]

40년 가까운 음악활동과 13년 간 방배동 와인 바 하며 번 돈을 모두 이 공간에 쏟았다. 10여년 간 가족처럼 지내온 유희열 가구작가에게 의뢰해 클래식 기타 상판 만드는 캐나다산 목재로 천정을 두르는 등 방음‧흡음 시설에 완벽을 기했다. 무대 정면 나무 선반엔 책가옥이란 이름에 걸맞게 다채로운 서적과 함께 손때 묻은 펜더 기타가 비치돼 있다. “외관부터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 라이브 녹음까지 24채널로 할 수 있게 구성했다”고 했다. 음향 까다롭게 따지기로 유명한 이승환도 단 한번 방문하고선 공연 의사를 비쳤을 정도다.

지난해 2월 금호영재 출신 ‘스트링 트리오’의 실내악 공연을 시작으로 ‘풀잎사랑’ 최성수의 언플러그드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섹소포니스트 손성제 공연 등을 진행했다. 클래식‧재즈‧가요‧팝 등 제한 없이 주1회 공연을 목표로 연간 스케줄을 짰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절반도 못했다. 이두헌 자신도 김민기 헌정음악회 등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다. 1980년대 ‘다섯손가락’ 당시 회색 도시의 애수가 깔린 보컬과 감성을 저미는 기타 리프는 변함 없다.

“1983년 만 스물도 안 된 친구들끼리 아마추어로 시작한 밴드라서 당시엔 인기란 거 실감도 못했다. 제대로 악법도 모르고 쓴 곡들인데 이제 보면 참신한 조성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김범수‧성시경 등의 리메이크 덕에 꾸준히 사랑 받았고 ‘풍선’(작사 이두헌, 작곡 김성호) 같은 경우 이젠 동방신기의 오리지널 곡인 줄 알더라.(웃음)”

밴드 해체 후 미국에 유학 갔다 돌아온 그는 십수년 전부터 커피에 빠졌다. 일본의 커피 명인 다이보 가쓰지에게서 영향 받은 로스팅 기법으로 손수 소량으로 원두를 골라 볶고 내리기 시작했다. “디테일 차이를 깨우치느라 갖다 버린 커피만 해도 수십 수백 ㎏ 될 것”이란다. 지금은 카페 단골 뿐 아니라 책가옥 브랜드 커피를 정기 주문하는 매니어들도 상당하다. “결국 음식이란 건 사람과의 관계다. 소주 마실 때와 와인 마실 때 하는 이야기가 다르고, 알콜 없이 커피로 만나는 사람이 다르더라. 그 차이가 차츰 나를 변화시켜 여기까지 왔다.”

이두헌 씨가 커피 로스팅을 하는 공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두헌 씨가 커피 로스팅을 하는 공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룹 '다섯손가락'의 보컬 이두헌 씨가 지난 21일 경기도 용인 수지의 복합문화공간 '책가옥'에서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라이브 공연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카페 책가옥은 층고가 7m에 이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룹 '다섯손가락'의 보컬 이두헌 씨가 지난 21일 경기도 용인 수지의 복합문화공간 '책가옥'에서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라이브 공연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카페 책가옥은 층고가 7m에 이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또 하나, 15년째 음악과 리더십을 주제로 대기업 초청 강사로 일한 경험도 삶을 서서히 바꿨단다. “소위 성공한 사람들, 일가를 이룬 분들이 삶에 대해 보이는 예의 같은 게 있다. 돌아보니 내가 그런 존중이 부족한 채 젊었을 땐 막 살았더라. 나희덕 시인이 어느 책에서 ‘장인(匠人)으로서의 엄격함과 예술가로서의 파격’을 말했는데, 나도 그렇게 나이 먹고 싶다. 20대 같은 호흡을 내진 못해도 60엔 그 나이에 맞는 소리를 내고 싶어서 쉬지 않고 곡을 쓴다.”

그런 의지를 담아 내후년 결성 40주년을 맞는 ‘다섯손가락’의 컴백 신보도 작업 중이다. 보컬 임형순과 건반 최태완 등 원년 멤버에 현재 ‘위대한 탄생’에서 활약 중인 베이스 이태윤과 단골 세션 드러머 장혁까지 ‘완전체’로 뭉친다. 타이틀 곡 제목은 ‘나는 나이기에 아름다운 것’.

“올 가을쯤 신보 나오면 다섯손가락도 책가옥 무대에 선다. 이번 이승환 공연을 계기로 더 알려지면, 예컨대 아이유 같은 이도 와서 공연할 수 있지 않을까. 백건우 선생님을 모시고 듣는 그 나이의 슈만은 또 어떨까. 외국 밴드가 방문해서 ‘여기 꼭 서고 싶었다’ 하는 공간으로 계속 만들어가겠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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