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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의 가르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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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주말 오후, 용산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선배님을 뵈었다. 소박한 독일 가정식을 표방한 곳이라 조금은 낯선 음식이니 주문에 앞서 메뉴를 자세히 살펴본다. 이런…. 어느새 중년을 지나 노안으로 불편을 겪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눈앞에 독일어가 펼쳐진다. 괜한 오기가 발동해, 작은 글씨로 병기된 영어를 외면하고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한 줄 한 줄 읽어 본다. 낯선 언어권에서 어림짐작으로 음식을 주문하고는 입이 짧아 손도 못 댄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잊고 지낸 지 30여 년이 지났음에도 음식과 식자재에 관한 단어 정도는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 모양이다. 메뉴에 있는 단어 몇 개 기억했다는 별것 아닌 뿌듯함에 뒤이어 까맣게 잊고 있던 사소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노부부가 보내온 퍼즐 담긴 봉투 #타인의 절실함을 헤아리는 마음 #존재=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서른 언저리 어느 겨울, 방학을 맞아 가족도 동료들도 모두 귀국했지만, 여건이 조금 나은 방을 구하고자 낯선 곳에서 몇 달을 홀로 머물렀다. 오후 4시면 어느새 하루가 저무는 알프스 산자락 소도시의 겨울. 추운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4월에도 눈이 내릴 만큼 그곳의 겨울은 하염없이 길다. 거기에 24시간 홀로 지내는 외로움까지 더하니 그해 겨울은 평생 지낼 모든 겨울을 다 더한 것인 양 느릿느릿 흘러갔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헛헛함을 달래려 대형 할인점에 들러 퍼즐을 하나 골랐다. 바이에른 왕국의 마지막 왕 루트비히 2세(Ludwig II, 1845~1886)가 건축한 ‘백조의 성(Neuschwanstein)’이 아득히 멀리 보이는 독일 남부 끝자락의 알프스 풍경이다.

방바닥에 쏟아 놓고 보니, 아뿔싸. 2000조각이 그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 수북이 쌓인 퍼즐 조각들을 색깔과 모양별로 분류하는 데만 며칠이 걸린다. 두 면이 반듯한 조각을 찾아 멀찌감치 네 귀퉁이에 배치하고 한 면이 반듯한 조각들을 이어 붙여 가장자리 틀을 잡기까지 자그마치 2주. 그사이에 새집을 구했다. 방바닥에 널려 있던 퍼즐 조각을 대충 주워 담고는 고양이 한 마리를 포함한 주인댁 여섯 식구에게 작별을 고했다. 옮긴 집에서 다시 한 조각 한 조각 제자리를 찾아 맞추기를 한 달여. 드디어 동화에나 있을법한 아름다운 고성(古城)을 품에 안은 알프스의 산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독일 자동차 명가 B사의 엠블럼에 담길 만큼 아름다운 바이에른의 푸른 하늘 한 귀퉁이에 놓일 마지막 한 조각이 보이지 않는다. ‘퍼즐 한 조각 씹어먹었다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두고두고 야단쳤다’라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가늠조차 할 수 없는 허탈함과 낭패감이 몰려온다. 같은 퍼즐을 다시 살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2000조각 중 그 한 조각을 찾으려 몇 날 며칠을 또 매달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것보다도 내게 필요한 한 조각을 찾고 나서 나머지 1999조각을 버리는 것은 경제적 측면을 떠나 그 퍼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아쉬운 대로 엇비슷한 색으로 땜질(?)한 ‘하자 있는 풍경’을 벽에 걸어 놓고는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지극히 작고 하찮은 것의 가치’를 새록새록 새기던 어느 날, 발신인도 수신인도 쓰여있지 않은 작은 봉투 하나가 우편함에 꽂혀있다. 광고지려니 생각하고 무심코 봉투를 뜯자 발등에 무언가 툭 떨어진다. 잃어버린 그 한 조각이다. 낯선 이방인이 머물던 방을 치우다 발견한 하찮은 퍼즐 한 조각을 챙겨 말없이 우편함에 넣어 놓고 가신 노부부의 발걸음이 가슴 한편을 사뿐히 지르밟는다. 청소기로 휙 빨아들일 수도, 별것 아니니 무심코 버릴 수도 있는 퍼즐 한 조각이 담긴 작은 봉투. 그 봉투에 담긴 나머지 한 조각이 제자리를 찾자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봄날의 부드러운 햇살이 환하게 창으로 들이친다. 겨우내 쌓인 알프스의 눈을 녹이고도 남을 만큼 따뜻한 노부부의 마음이 온 방을 가득 채운다. 비록 하찮은 것일지라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의 절실함을 헤아리는 자상하고 넉넉한 그 마음 씀씀이가.

공부를 위해 잠시 머물렀던 그곳에서 얻은 전문지식보다 그해 겨울 퍼즐 한 조각으로 얻은 것이 내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잃어버린 한 조각으로 인한 허탈감 속에서 되새긴 ‘있어야 할 자리’, ‘해야 할 일’, ‘존재의 가치’에 대한 성찰은 나를 넘어 타인의 역할과 존재를 존중하라는 지극히 당연한 가르침으로 오늘도 어쭙잖은 생각과 칼처럼 날뛰려는 혀를 제어하려 안간힘을 다한다. 그리고 비록 하찮은 것일지라도 그것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를 생각하는 마음 씀씀이로, 단 한 번의 발걸음만으로도 타인의 행복에 일조할 수 있음을 실감했기에 ‘괜스레 오지랖 넓다’는 비아냥도 웃어넘긴다.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