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달려들어 목덜미 문 대형견…50대 죽음 책임지는 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기 남양주에서 50대 여성이 대형견에 물려 숨진 사고와 관련해 경찰이 23일 오전 개를 마취한 뒤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남양주에서 50대 여성이 대형견에 물려 숨진 사고와 관련해 경찰이 23일 오전 개를 마취한 뒤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남양주시에서 50대 여성이 대형견에 목덜미를 물려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개물림 사고가 이어지면서 견주에게 더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3일 경찰과 소방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3시 25분쯤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야산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A씨(59·여)를 행인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A씨는 목 뒷덜미 등에서 많은 피를 흘려 심정지 상태였다. 응급처치 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A씨는 1시간여 만에 숨졌다.

견주 찾는 경찰…유기견 가능성도 

A씨를 공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개는 사고 현장 인근에서 포획됐다. 남양주북부경찰서에 따르면 무게 30㎏가량인 이 개는 골든레트리버 잡종으로 알려졌지만, 전문가에게 문의 결과 풍산개와 사모예드 잡종에 가깝다는 소견을 받았다.

애초 이 개는 인근 사육장에서 탈출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사육장 주인이 “내가 기르던 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경찰은 탐문과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통해 개 주인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경찰은 “먹이를 찾고자 주변을 배회하는 개들이 보였다”는 사육장 주인의 진술을 토대로 유기견일 가능성 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대형견 이미지. 뉴스1

대형견 이미지. 뉴스1

이웅종 연암대학교 동물보호계열 교수(이삭애견훈련소 대표)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개는 두려움이 많아 주인 외 사람을 공격 대상으로 인식한다. 그중 아이나 노인이 약하다는 것을 개들은 본능적으로 안다”며 “소리를 지르며 두려워하거나 발로 차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등 위협을 가하면 사고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목덜미나 아랫배, 종아리 등을 약한 부위로 인식해 공격하기 때문에 맹견을 맞닥뜨릴 경우 손깍지를 껴서 목을 감싸야 한다”며 “다른 부위를 보호하려면 차라리 손을 내주는 것도 방법이지만 위급상황에서 그러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 물림사고, 견주에 엄중 책임 물어야” 

맹견 가면을 쓴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지난 2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맹견 보험의무화 관련 맹견 수입 금지 및 개농장 퇴출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맹견 가면을 쓴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지난 2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맹견 보험의무화 관련 맹견 수입 금지 및 개농장 퇴출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개 물림사고가 잇따르면서 전문가들은 견주에게 보다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2월부터 맹견 소유자 대상 배상책임 의무보험과 같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국내에선 올해부터 맹견으로 지정된 종(種)을 소유하거나 번식·판매를 할 경우 책임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고 이를 어길 시 과태료 등을 내야 한다. 하지만 사실상 이런 제도는 외국에선 없어지는 추세”라며 “맹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고 수출이나 판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맹견이라고 함부로 지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순한 종으로 알려진 골든레트리버도 환경적 요인 등으로 맹견이 될 수 있다”며 “개가 사람이나 다른 개를 문 경험이 있거나 통제 불능이라면 보호자가 자발적으로 개를 전문적 교육기관에 맡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2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맹견 책임보험 의무화 관련 '맹견 수입금지' 및 '개 농장 퇴출' 촉구 기자회견. 연합뉴스

지난 2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맹견 책임보험 의무화 관련 '맹견 수입금지' 및 '개 농장 퇴출' 촉구 기자회견. 연합뉴스

“합의 무관하게 가해 견주 기소해야” 주장도  

개물림을 당한 피해자가 중대한 상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엔 피해자 측과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가해 반려견 소유주를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무런 조치나 처벌을 가하지 않으면 반려견 관리·감독을 소홀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성자 강원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2019년 ‘미국 동물법 발전현황과 시사점’이라는 논문을 통해 “피해자 측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해 반려견 소유주에게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은 반려견의 관리나 감독을 해야 할 동기 부여를 저해하는 법 집행 유기”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개물림을 당한 피해자의 상해가 중한 경우 피해자 측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 해도 반의사불벌죄의 예외로서 기소하는 방향으로 기준이 확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에서 검은 대형견 로트와일러가 흰색 소형견 스피츠를 물어 죽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튜브 캡처

지난해 7월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에서 검은 대형견 로트와일러가 흰색 소형견 스피츠를 물어 죽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튜브 캡처

한편 지난해 7월 산책하던 소형견을 물어 죽게 한 맹견 주인에 대해 검찰은 지난달 징역형을 구형했다. 법조계에선 현행법상 반려견이 ‘물건’으로 규정되는 만큼 실형은 과하다는 반응과 함께 생명체를 물건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서울서부지법 형사3단독 정금영 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스피츠를 물어 죽게 하고 스피츠 견주를 다치게 한 혐의(동물보호법 위반·재물손괴)를 받는 로트와일러의 견주 이모(76)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1심 선고 재판은 오는 26일 열린다.

로트와일러. 사진 한국애견협회

로트와일러. 사진 한국애견협회

당시 검찰은 “피고인은 동종 사건으로 과실치상 전력이 있다”며 “이전에도 세 번에 걸쳐 피고인 소유 로트와일러가 다른 소형견을 물어 죽이거나 물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범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본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씨 측은 “피고인이 장애 판정을 받아 거동이 불편하다는 점 등을 참작해 벌금형을 선고해달라”고 선처를 구했다. 이씨 측 변호인은 재판이 끝난 뒤 “개가 개를 문 사건일 뿐인데 언론 보도로 주목을 받아 검찰이 징역형을 구형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