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이들 담고 'GR하네' 자막…부모들 경악한 '교사 브이로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20일 유튜브에 '교사 브이로그'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 유튜브 캡처

20일 유튜브에 '교사 브이로그'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 유튜브 캡처

“아이들 모자이크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 담은 브이로그 형식 동영상 #학교·학생·동료교사 등장 빈번 #“거절하면 생기부 영향 갈까 불안” #‘촬영 금지해달라’ 청와대 청원도

청와대 국민청원에 지난 19일 올라온 하소연이다. ‘교사의 학교 브이로그 촬영을 금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다. 청원인은 “아이들 목소리를 변조해주지 않기도 한다. 인터넷은 온갖 악플들이 난립하는 위험한 곳인데 거기에 아이들이 노출되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교사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교사 브이로그(Vlogㆍ자신의 일상을 담은 동영상)’가 늘면서 학부모들도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20일 유튜브에 ‘교사 브이로그’를 검색하면 다수의 초ㆍ중ㆍ고교 교사 유튜버의 채널이 나온다. 조회 수 100만이 넘는 영상도 10여개다. 이들은 주로 교실, 교무실 등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상을 영상에 담는다.

공무원인 교사가 부수입을 창출하는 유튜버가 가능할까. 일단 ‘겸업’은 가능하다. 국가공무원법 제64조에는 ‘공무원은 공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교사들의 유튜브 활동은 도서 집필과 같이 ‘창작 활동’으로 분류돼 학교장의 승인을 받으면 가능하다. 교육부도 이미 2019년 교사 유튜버가 늘자 겸직 허가 요건을 정했다.

"불특정 다수에 아이들 공개"

교육 당국의 승인을 받은 유튜브이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만은 적지 않다. 교사 브이로그는 교사의 일상을 촬영하는 만큼, 학생이나 동료 교사가 영상에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선 아이들의 신상 노출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우모(34)씨는 “모자이크한다고 해도, 영상이 지속해서 올라오기 때문에 학교가 특정될 수 있다. 교사가 학생 이름을 부르기도 하는데, 불특정 다수에게 아이들이 공개되는 게 불안하고 무섭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 문제를 제기한 한 네티즌은 “대놓고 ‘돌았네, GR하네’ 이런 자막 다시는 분도 있던데 교사도 공무원인데 품위유지는 어디다 팔아먹은 건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난 아이들한테 다정한 착한 선생님’에 도취한 게 눈에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주장에 ‘학교에 민원을 넣으면 교장 선에서 해결된다’거나 ‘교육청에 민원 넣으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거절하면 생기부 영향갈까 불안"

교사 브이로그에는 학생들이 자주 등장한다. 유튜브 캡처

교사 브이로그에는 학생들이 자주 등장한다. 유튜브 캡처

촬영 동의 여부도 논란이다. 유튜버들은 ‘동의 하에 촬영한 영상’이라고 명시하지만, ‘학생의 동의만 받을 게 아니라 학부모한테 받아야 한다’ ‘담임이 찍겠다는데 애들이 어떻게 거절하겠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교육부가 작성한 교원 유튜브 활동 복무지침에 따르면 ‘학생이 등장하는 영상을 제작하는 경우, 학생 본인 및 보호자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며, 학교장은 제작 목적, 사전 동의 여부, 내용의 적절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촬영 허가 결정을 한다’고 규정돼 있다.

자신을 학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쌤이 브이로그 한다고 했을 때, 좋다고 분위기 주도하는 애들 사이에서 누가 반대를 할 수 있을까요”라며 “영상은 동의하는 애들끼리만 찍는데, 거절한 애들은 생활기록부랑 평판에 악영향 생길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고 적었다.

“교무실 촬영 불편” vs “교사에게도 유익”

‘교사 유튜버’에 대한 동료 교사들의 시선도 곱지는 않다. 경기도 수원시에서 교사로 근무 중인 A씨는 “같은 교사지만 브이로그 영상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교무실에서도 대놓고 찍으시던데 너무 불편하다. 아이들 교육보다 본인 영상 만드는 데 더 시간을 쏟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교재 연구 등 기존 업무에 코로나19로 추가된 업무 때문에 시간이 벅찬데, 브이로그 할 시간이 언제 나는지는 모르겠다. 나만 바쁜 건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올해 초임이라는 B씨는 “이제 막 교사가 된 입장에서는 도움이 많이 되고 유익하긴 하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들 본다. 훗날 교사를 꿈꾸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교사 유튜브 2534건…“인기 위주 제작 곤란”  

교원 유튜브 활동 복무지침에 적시된 유튜브 활동 관련 복무기준. 자료 교육부

교원 유튜브 활동 복무지침에 적시된 유튜브 활동 관련 복무기준. 자료 교육부

20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교사 유튜브 채널은 2534건(중복 포함)이다. 이 가운데 유튜브 광고수익 최소 요건인 구독자 1000명 이상 등을 달성해 겸직 허가를 받은 교사 유튜브 채널은 528건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ㆍ학부모 동의를 얻지 않고 영상을 올렸다고 한다면 교육부의 ‘교원 유튜브 활동 복무 지침’을 어긴 행위”라며 “각 시ㆍ도 교육청이나 지원청 측에 징계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사의 브이로그 촬영으로 민원이나 항의가 들어온 적은 없다”면서도 “영상이 학생 초상권 등을 지키지 못했다고 판단되면 영상 삭제 조치를 할 수 있다. 문제가 된 부분이 있다면 지도ㆍ감독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상호 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일반인과 다르게 교사들은 왜 브이로그를 하는지를 스스로 묻고 시작해야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이해 후 영상을 올려야 한다”며 “성별·계층·세대 등 사회 갈등 문제나 이념 등 교육과 상관없는 이슈들이 교사 유튜브를 타고 여과 없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교사는 학생에게 유튜브를 올바르게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지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기 위주 영상 제작보다는 그런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혜림·채혜선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