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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 "시범케이스 될라“…사적모임 금지 해제돼도 '혼밥'

중앙일보

입력

“상사가 모임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30년 가까이 공무원 생활을 한 7급 여성 공무원 A씨(54)의 하소연이다. 공무원 사적모임 금지가 지난 3일 해제된 이후에도 직장 상사의 금지 방침은 풀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A씨와 비슷한 고충을 호소하는 공무원들은 적지 않다. 일각에선 공직자들의 ‘코로나 노이로제’라는 말도 나온다.

해제되지 않는 사적모임 금지 

코로나19 특별방역의 일환으로 지난달 28일부터 일주일간 시행된 ‘공무원 4인 이하 사적모임 금지’는 지난 3일 해제됐다. 하지만, 일부 현직 공무원들은 “해제가 풀려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공직 사회에서는 “공무원의 방역 수칙 준수 여부를 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어느 때보다 예민하다는 걸 너무 의식한다”는 불평이 나온다.

광주 북구청의 한 공무원이 사무실 출입문에 '사적모임 금지'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이날부터 시행된 특별방역관리주간은 지난 2일까지 유지됐다. 뉴스1

광주 북구청의 한 공무원이 사무실 출입문에 '사적모임 금지'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이날부터 시행된 특별방역관리주간은 지난 2일까지 유지됐다. 뉴스1

A씨는 “이미 지난해부터 회식이나 사적모임이 다 없어졌는데 더 이상 뭘 지키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지역 초등학교 교사인 김모(32)씨는 “공직에 있다보니 몇달째 친구들과 모임조차 나가지 않는다”며 “만약 내가 놀다가 코로나19 검사라도 받게 되면 무슨 욕을 먹을지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범 케이스 될까 두려워”

공무원들의 피로감이 큰 이유는 소속 기관의 과도한 단속 분위기도 영향을 주고 있다. 서울시에서 일하는 공무원 손모(40대)씨는 “코로나19 관련 문제를 일으키면 곧바로 ‘시범케이스’ 징계로 연결되는 분위기”라면서 “사적모임 금지령이 풀린 뒤에도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손씨는 “사적모임 금지령뿐 아니라 평소에도 방역수칙 준수 공문이 너무 자주 내려와 노조에서 수차례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부서울청사 구내식당의 모습. 서울시 모 구청 직원은 "점심, 저녁 식사를 모두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 날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고 했다. 연합뉴스

정부서울청사 구내식당의 모습. 서울시 모 구청 직원은 "점심, 저녁 식사를 모두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 날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고 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오전 서울시의 한 세무서에서는 ‘기자 감금’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방역수칙 위반이 아니냐”는 기자의 문제 제기를 막으려다 벌어진 촌극이었다. 당시 세무서 관계자는 세무서장 등의 ‘옥상 간담회’ 사진을 찍은 기자를 저지하려다 실랑이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세청 측은 ’기자를 감금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 “이날 자리는 사적 모임이 아니라 회의이므로 20명까지도 참석할 수 있고 회의에는 4명이 모였다”며 방역수칙 위반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100만 공무원 대부분 잘 지키는데…”

공무원들의 방역 일탈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일 경기도 광명시는 5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어기고 외부인 3명과 함께 식사한 소속 공무원 3명에게 과태료를 부과했다. 지난 3월에는 경남 창녕군 공무원 4명이 민간인 1명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가요주점으로 가 도우미를 불러 술을 마셨다가 적발됐다. 서울시의 한 구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박모(29)씨는 “공무원이 몇십만명인데 이런 사례가 왜 없겠냐”며 “공무원들도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걸 알고 대부분 잘 지킨다”며 공무원에 대한 ‘과도한 잣대’에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를 믿고 따른 국민의 기대와 불만, 이에 부응해 모범을 보이고 성과를 내야 하는 공직 사회의 책임이 뒤엉킨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들이 강도 높은 방역수칙에 협조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한 부분인 공무원이 자신이 뱉은 말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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