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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는 왜 이성윤을 감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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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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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라도 되는 걸까. 안양지청의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사건 수사를 무마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얘기다. 지난 2월 신현수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의를 밝힌 것도 이 지검장 유임 문제로 박범계 법무부 장관 등과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 지검장은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김 처장의 관용차를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 ‘황제 조사’ 논란이 일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박 장관 “기소와 직무배제는 별개” #이성윤 현직 유지가 공정 재판 저해 #고위 공직자의 공소사실 공개돼야

지난 10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이 지검장에 대한 기소를 권고했음에도 박범계 장관은 “기소와 직무배제는 별개”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지검장이 기소된 후 공소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박 장관은 “이 지검장 공소장이 당사자 측에 송달되기 전에 그대로 불법 유출됐다는 의혹이 있다”며 대검에 감찰을 지시했다. 박 장관은 지난 17일 “개인정보와 수사기밀과 같은 보호 법익이 침해된 게 아닌가 의혹을 갖고 있다”며 “기소된 피고인도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피고인이었다면 박 장관 말에 수긍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성윤 지검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는 검찰의 최고 요직이라는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등 세 자리를 거친 법률가다. 자신이 요청해 열린 수사심의위원회에 출석했으니 수사팀이 뭘 의심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검사이니 검사들의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서 공소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지검장은 누구보다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행사했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식의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지검장의 재판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수사는 수원지검 수사팀이 했지만 재판은 서울중앙지검 검사 직무대리로 참여한다. 상관은 이 지검장이다. 이 지검장은 김학의 사건과 관련해선 보고를 받지 않겠다며 회피 신청을 했지만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얻는 직·간접 정보는 재판에 득이 되지 하등 손해가 될 일은 없다. 이 지검장이 현직에 있는 게 오히려 공정한 재판을 방해한다.

서소문 포럼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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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간의 탄핵을 받은 고위 관리는 조사가 끝날 때까지 직을 내려놓았는데 이를 피혐(避嫌)이라고 한다. 요즘 말로는 현직 프리미엄을 누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지위와 관계없이 공정하게 수사받고 재판받도록 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목표가 아니던가.

애초 법무부와 검찰에 과거사위와 진상 조사단을 만들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동영상 사건을 왜 조사했나. 진실을 규명하고 검찰의 제 식구 봐주기 의혹 등을 밝히려는 차원이었다. 이를 위해선 절차적 정당성에 흠결이 없도록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엄정 처리했으면 됐다. 하지만 명분에 집착해 조급하게 일을 처리하고, 오히려 이를 감싸다 보니 오늘의 이런 사태를 불러왔다.

그런 점에서 박 장관이 지금이라도 기소된 이 지검장을 수사지휘를 하지 않는 자리로 인사 조치하는 게 온당한 일이다. 그래야만 박 장관이 지시한 공소사실 유출 의혹에 대한 감찰 지시에도 명분이 실린다.

이 지검장이 기소됐지만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다른 관련자의 역할은 좀 더 규명돼야 한다. 앞서 기소된 이규원 검사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의 공소장은 공개되지 않았다.

기소라는 것은 수사 결과 죄가 있다고 보고 공개 재판에 넘긴다는 의미다.  형법상 피의사실 공표죄는 기소 전에 이뤄져야 성립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법무부 형사사건 공개금지규정을 개정해 검사를 포함한 고위 공직자의 직무 관련 혐의 사실은 원칙적으로 기소 시점에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공직사회에도 경종을 울릴 수 있다.

이 지검장의 공소사실을 보면 안양지청의 수사 무마 과정에 검찰 내부의 커넥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윤대진 당시 검찰국장은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현철 안양지청장과 통화를 한다. 김학의 출금 과정에서 허위사건 번호를 넣은 혐의로 기소된 이규원 검사는 연수원 동기인 이광철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현 민정비서관)과 연락을 했다. 이성윤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출신 지역 후배인 배용원 안양지청 차장검사와 주로 얘기한 것으로 나온다.

공식 라인보다 연수원 기수와 학연·지연에 의존했다. 뭔가 은밀한 결정이 필요할 때 동원되는 방식이다. 이런 걸 혁파하는 게 진정한 검찰 개혁이다.

김원배 사회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