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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뭘 검증했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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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형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형구 정치에디터

김형구 정치에디터

낮고 차분하던 문재인 대통령 어조가 한 톤 높아진 걸 보고 흉중 생각이 그만큼 쌓였던 얘기구나 싶었다. 취임 4주년을 맞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다. 부동산 정책의 과오를 담담하게 사과하던 문 대통령이 인사청문제도의 폐단을 하나하나 지적할 때는 단호하고 확신에 찬 어조였다. “흠결만 따지는 청문회, 무안주기식 청문회, 이런 청문회로는 정말 좋은 인재를 발탁할 수 없다”고 한 대목은 하소연처럼 들리기도 했다.

“좋은 인재 쓸 수 없다”는 문 대통령 #청문회 개선 제안하지만 회의적 #답은 6년전 말한 “철저한 사전검증”

천거한 인사가 낙마해 국정 공백이 생길 때 국정 최고책임자가 직면할 고민과 아쉬움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적임자를 찾기 어렵거니와 마음껏 쓰지도 못한다는 대통령 한탄이 오죽했으면 나왔을까도 싶다.

하지만 7년 전 ‘정홍원 총리 블랙홀 사건’을 비롯한 청문회 내로남불의 무한 루프 역사를 돌이켜보면 청문회엔 죄가 없다는 심증을 굳히게 된다. 2014년 6월에도 청문회 개혁론이 일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문창극·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각각 역사관·전관예우 논란의 벽을 못 넘고 잇따라 낙마하면서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한 뒤 후임자를 기다리던 당시 정홍원 총리는 퇴로가 막히고 말았다. 그러자 2014년 6월 29일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윤영석 원내대변인은 이런 논평을 내놨다. “인사청문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1년 4개월 만에 무려 3명의 총리 후보자가 낙마했다. 인사청문 검증이 지나치게 가혹하다.” 화자만 바뀌었을 뿐 문 대통령이 한 얘기 그대로다.

서소문 포럼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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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총리 강제유임 사태’는 이완구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다음해 2월 16일 국회를 통과하고서야 끝났다. 부적격을 이유로 이완구 후보자 자진사퇴를 촉구했던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를 향해 ‘인사검증 부실’을 비판한 건 추상같았다. “청와대는 도대체 무엇을 검증했는지, 검증하긴 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청와대의 모습은 기이하다.”

청문 정국이 시작되면 여의도 국회는 전투 모드다. 후보자 관련 서류 더미를 뒤적이며 주변을 샅샅이 훑는 야당 의원과 보좌진이 밤늦도록 사무실 불을 밝힌다. 기자들도 후보자 신상 정보가 담긴 100여 쪽의 인사청문요청안 사본은 물론 부동산 등기부등본, 과거 논문과 기고문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결격 여부를 따져본다. 신상털기나 ‘아니면 말고’ 식 폭로 등 과열 경쟁의 부작용이 없지 않지만 권한과 책임이 큰 고위 공직자들의 옥석을 가리는 일의 중요도가 덮고도 남는다.

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회견에서 “저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정부를 위해 필요하다”며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고, 공개 청문회에선 정책과 능력을 따지는 방식을 제안했다. 여론은 어떨까. 공개 검증을 더 원한다. 지난 14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이 제안한 방식이 좋다고 한 응답은 19%에 그쳤다. 반면 도덕성과 정책 능력 모두 공개 검증하는 방식이 좋다는 쪽은 71%로 압도적이었다. ‘후보자 검증 때 무엇을 더 우선시해야 하느냐’는 물음에도 도덕성, 정책 능력을 꼽은 응답이 각각 47%로 동률이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 상당수가 도덕성 잣대를 공직자 인선의 최우선 덕목으로 보고 있다는 건 관료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는 걸 반영한 듯하다. 하긴 위장 전입은 ‘필수과목’이요, 논문 표절은 ‘선택과목’처럼 일상화된 공직자들, 여기에 LH 공무원 땅투기 사건이나 세종 특별공급 아파트 먹튀 사건 등 끊이지 않고 터지는 공직자 일탈을 접하게 되면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

위선과 이중성을 꼬집는 내로남불이 한 달 전 미국 뉴욕타임스에 ‘naeronambul’로 소개된 적 있다. 정권이 교체되면 공수가 뒤바뀐 여야가 벌이는 내로남불의 끝판왕은 아마도 인사청문회 아닌가 싶다. 문 대통령이 청문회 개정을 제안했는데, 현실성이 있을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야당일 때는 후보자 낙마에 총동원한 화력을 여당이 되면 청문회 무력화에 쏟아붓는 정치권, 그리고 국민의 부정적 여론을 생각하면 그렇다. 오히려 문 대통령이 6년 전 야당 대표 시절 했던 말이 청문회 난맥상을 푸는 해법에 더 가까워 보인다. “청와대는 도대체 무엇을 검증했느냐”며 청문회에 세우기 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철저한 사전 검증부터 할 것을 다그쳤던 것 말이다.

26일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김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 사전 검증은 문 대통령이 6년 전 요구했던 기준에 부합할 수 있을까.

김형구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