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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대응, 진심 없다” 환경덕후 타일러 中 못믿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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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방송인 타일러 라시(33)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수경PD

지난 6일 방송인 타일러 라시(33)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수경PD

“한국은 이미 늦었어요. 뭐라도 빨리 해야 해요.”

한국 기후 위기 문제에 진심으로 목소리를 내는 미국인이 있다. 방송인 타일러 라시(33)다. 6년째 돈을 안 받고 세계자연기금(WWF·World Wildlife Fund)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각종 기후 관련 강연·토론도 꼬박꼬박 나간다. 지난해엔 환경 문제 고민을 담은 책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썼다. 비싸고 번거롭지만, 친환경 콩기름 잉크로 인쇄하고 FSC(Forest Strewardship Council·국제산림관리협의회) 인증받은 종이로 책을 엮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환경 덕후’의 허황된 고민일까 싶지만, 정작 그는 “기후위기는 담론이 아닌, 눈앞의 재앙”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더 적극적인 활동 할 욕심은.
내게 주어진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아무래도 오디언스(audience)가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고, 한국어로 콘텐트를 만들 수 있는 게 내 일이라서 환경 이야기도 한국에서 더 쉽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8개 언어 가능하다. 비결은.
원래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배우고 싶은 건 갖고 놀았다. 언어도 그렇게 몇 개씩 모아갔다. 그렇다고 8개 언어가 완벽하진 않다. 말하고, 읽고, 쓰는 게 다 되는 건 아니다. 국제정치 전공도 다양한 언어를 공부할 수 있어서 택했다.
환경 운동도 전공 영향인가.
아니다. 유년 시절 경험과 한국 생활이 섞인 게 계기다. 미국 동북부 버몬트 주(州)에서 나고 자랐다. 덴마크와 캐나다를 닮은 동네다. 미국 최초로 100% 재생 에너지로 동네가 돌아간다. 전체 면적의 75%가 산림이다. 이후 서울에 살면서 미세먼지를 직접 겪으며 기후 문제에 관심이 높아졌다. 2016년부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환경운동 시작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많이 달라졌다. 처음 2~3년 동안은 미세먼지나 기후 문제 얘기하면 ‘한국은 기후 문제에 영향력이 크지 않다’, ‘미국 가서 얘기해라’,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같은 말을 종종 들었다. 그런데 2018년 전후 그레타 툰베리를 통해 세계적으로 ‘등교 거부 운동(School Strike for Climate)’이 벌어지고 한국도 이런 게 많이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인식이 나아졌다. 이런 전환은 다행이다.
2019년 스웨덴 10대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시위'는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진 AP·조은재PD

2019년 스웨덴 10대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시위'는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진 AP·조은재PD

국경은 의미가 없는 걸까.
기후위기는 국경이 상관없다. 한국 기업·정부가 국내에선 화석연료 공장 더 안 짓지만, 해외에 화석연료 공장을 지으면서 ‘탄소 문제 해결했어요’라고 말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 지구 전체를 봐야 한다.
‘한국보다 앞선 선진국 책임 더 크다’는 말도 자주 들린다.
한국은 선진국이다. ‘문화적으로 (선진국이) 아니다’라고 할 순 있다. 그렇게 따지면 미국도 문화적으로 선진국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경찰이 과잉(진압)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 선진국인가? 선진국이란 표현은 경제적 차원의 표현이다. 문화가 아니다. 한국 정부·기업의 경제적 영향력을 보면 선진국이란 걸 부정할 수 없다. 부정하면 책임 회피다.
지난 달 22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상춘재에서 미국이 주최한 화상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달 22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상춘재에서 미국이 주최한 화상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4월 기후정상회의 이후 세계가 분주하다. 예측도 다양하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추구했던 리더십은 중국식 (통치) 모델이 더 잘 나오게 만드는 구조였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발도상국에 기후대응 관련 기술 지원을 한다면 다자 협업 생태계가 될 수 있다. 미국을 주로 말하는데, 사실 유럽 연합(EU)을 봐야 한다. (환경 문제는) EU가 앞서있다. 미국도 ‘유럽을 이겨야 하는데…’라는 생각으로 움직인다. 유럽에 탄소세가 도입되면 그 기준으로 국제 무역이 결정된다. 그 표준을 만들고 싶은 미국 정치 세력이 있다. 이들이 얼마나 리더십을 잡고 갈지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주목할 곳은 러시아다. 러시아를 빼놓고 (기후 위기와 관련된) 미래 세계 질서를 말할 수 없다. 지구 평균 온도가 오를수록 러시아 입장에선 활용 못 했던 땅에서 식량 생산이 수월해진다. 이해관계가 분명히 있을 수 있다.
중국도 2060년을 탄소 중립 목표로 잡았다.
너무 늦지 않나. (웃음) 중국은 정당이 하나다. 정당이 국민 뜻을 반영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국민) 지지도 필요 없다. 중국의 국익은 곧 공산당의 이익이다. 당이 잘 되기 위한 결정을 한다. 이런 시스템은 다른 나라와 너무 다르다. 다른 대외 정책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은 대외적으로 보이는 걸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다.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의지로 보이지만 2060년이란 목표는 말이 안 된다. 그 연도를 고른 건 진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후 위기 문제를 다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은 협업을 거부하는 방식이었다. 바이든 대통령 시대를 맞아 미국의 이런 기조는 달라질 가능성이 보인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기후 위기 문제를 다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은 협업을 거부하는 방식이었다. 바이든 대통령 시대를 맞아 미국의 이런 기조는 달라질 가능성이 보인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계획을 못 믿는 이유는
찾아보면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세상에 있는 일인가 싶은 경우가 많다. 비판해도 안 바뀐다. 만약 이런 시스템이 바뀌면 중국은 얼마든지 (국제 사회에서) 리더십을 가질 나라인데 안 바뀌는 구조다. 기후위기 (대응)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기본적으로 다른 국가들과 똑같이 해석하면 안 된다. 한국은 (중국을) 똑같이 해석해서 당한 게 너무 많다. 
역사 왜곡 등 반중 감정과 분노를 말하는 건가.
화가 나야 한다. 화가 안 나면 이상하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가적으로 탓할 게 있으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 이해도가 높아져야 한다. 중국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게 아니다. 중국이 어떤 시스템인지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중국해’, ‘김치’, ‘한복’ 이런 논란도 왜곡을 넘어서 엄청난 중화사상의 일부다. 국제법상으로 한반도를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로 보겠지만, 마음속으로 어떻게 볼지 의심해야 한다. 이런 뭔가 정치적 흐름이 있는 나라다. 지적할 건 지적하고, 화나면 화가 난 만큼 표현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기도 한다.
개인에게 낙인이 찍히면 그게 어떤 집단에 유리할까. 2019년 멕시코만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던 BP라는 영국 석유회사가 ‘본인의 생태(탄소) 발자국을 확인하세요. 응원합니다’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러면 초점이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개인한테 간다. 그런데 실제 통계 보면 미국인 한 명이 연간 배출한 탄소 비율이 지구 전체 연간 배출량의 0.0000000003%라고 한다. 통계학적으로 0%이다. 일상에서 어떤 물건을 사는지, 불을 껐는지, 이런 행동이 탄소배출에 실질적인 영향이 크게 없다는 뜻이다. 정작 99% 이상 책임 있는 정부·기업은 관심에서 멀어진다. 
2019년 영국 석유회사 BP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탄소 발자국' 캠페인을 펼쳤다. 사진 BP 트위터

2019년 영국 석유회사 BP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탄소 발자국' 캠페인을 펼쳤다. 사진 BP 트위터

기후위기 문제가 종말론적 공포마케팅이란 비판도 있다.
척추동물 10마리 중 7마리가 이미 사라졌다. 사람도 척추동물이다. 생명을 지탱해줄 지구의 능력이 점점 떨어진다. 마케팅이 아니라 정말 두려운 상황이다. 이걸 이용하려는 데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환경문제에서 “우리는 호구로 살았다”고 했다.
그동안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살았다. 그런데 잘 보면 1950년대 후반 온실가스 효과를 알게 되면서 기후위기가 시작됐다는 걸 알았고 1980년대 이런 목소리가 정치권에 반영되면서 몬트리올·리우데자네이루·교토 국제회의에서 뭔가 하는 것처럼 반세기가 흘렀다. 그런데 그동안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다. ‘괜찮다’고 말한 이들에게 당했다. 해결된 게 전혀 없다. 그리고 그 결과를 겪는 건 이제 우리다. 이게 호구 아닌가.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조은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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